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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바보들에게 주어진 특권이라는 농담

by 신성규

나는 사랑에 빠지기에는 너무 많이 생각해버리는 사람이다.

논리 구조가 감정의 곡선을 가로지르고,

자존과 자각이 본능을 제지한다.


사랑이란 본래 불확실성 위에 몸을 던지는 행위인데

나는 늘 낙하각도를 계산하고,

감정의 진폭보다 추락의 가능성을 먼저 떠올린다.


그래서 나는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바보들에게 주어진 특권이지.”

불확실성을 아름답다고 믿을 수 있는 사람들,

스스로를 속인 채 심장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은 어쩌면 지능이 낮아서가 아니라,

용기가 나보다 큰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누군가를 바라보기 전에 먼저 ‘우리’를 시뮬레이션한다.

가능성과 리스크를 나열하고,

관계의 균열 지점을 미리 탐지한다.

사랑을 이상으로 삼는 대신,

모호함 속에 숨은 위험을 경계한다.


그렇다고 내가 사랑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랑을 이해하려는 순간 그것이 멀어진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을 뿐이다.

지능이란 결국, 내가 원치 않는 진실을

너무 많이 알아버리는 능력이기도 하니까.


때때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잃어버린 건 지능 이전의 세계,

어리석음을 감수할 줄 알던 감각이 아닐까.

자존이 깨질지도 모르는 불안보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시절.


사랑을 믿기 위해 이유가 필요 없던 시절.


지금의 나는 무엇이 맞는지를 묻지만

어쩌면 사랑은 언제나

틀릴 준비가 된 사람이 먼저 도착하는 곳일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가끔 바란다.

아무 계산도 없이,

아무 의미도 묻지 않고,

근거 없이 누군가를 선택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런 날, 나는 비로소

이 농담을 잊을지도 모른다.


“사랑은 바보들의 특권이다.”


그리고 조용히 깨닫게 되겠지.

그 말이 진짜 바보 같았던 건

세상이 아니라,

그 문장에 기대 숨어버렸던 나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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