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차원적 사고자에게 권하는 타인과의 관계 기술

by 신성규

나는 자주 사람들의 말 속에서 단서를 수집한다.

그들이 무심코 흘린 말—자신의 취향, 일상의 습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 정보들—그것들은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각인된다. 단지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새로운 맥락을 조합해낸다. 마치 탐정처럼, 말과 말 사이의 공백을 연결하고, 행동과 언어의 불일치를 해석하며, 그 사람의 심리적 구조를 역산해본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그런 나의 방식에 놀란다는 점이다. 어떤 이는 “어떻게 그것까지 기억하냐”고 말하고, 어떤 이는 “무섭다”고 표현하며, 또 어떤 이는 내가 그가 말하지 않은 사실까지 추론했을 때 그것을 거짓말 탐지로 오해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것이 특별한 기술이 아니다.

그저 다층적 인지 구조 속에서 사람의 말과 행동을 연속적인 정보로 다룰 뿐이다.


일반적인 사회적 대화는 대부분 ‘표면 반응’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한 사람이 “요즘 걷는 게 좋아졌어”라고 말하면, 다수의 사람은 “그렇구나, 건강에 좋지” 정도로 반응한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왜 지금 그런 말을 했는가’, ‘최근 심리 변화가 있었는가’, ‘우울하거나 정체되던 상태에서 회복되고 있는 건 아닌가?’ 같은 심층 정보처리 루트로 넘어간다.


이는 단순히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다. 기억 + 연산 + 맥락 통합이 동시에 작동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인지 처리의 깊이 차이라고 볼 수 있다.


대다수는 타인의 말이 이런 방식으로 구조화되어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한다. 즉, ‘정보 ㅡ 분석 ㅡ 인격화 ㅡ 피드백’이라는 순환이 없고, 정보는 단발적으로 소비된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고, 연결하고, 추론했을 때 그것이 “초능력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내가 정보를 비선형적이고, 시간적 누적 방식으로 처리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그런 사고의 층이 없기 때문에, 내가 하고 있는 사고가 사고라는 개념으로조차 인식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나의 기억으로 감동을 받는다. 그가 잊고 있던 자신의 이야기를, 내가 더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정이 흔들린다. 이것은 기억이 단순한 정보 저장이 아니라, 관계적 감응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시에 어떤 이에게는 두려움이 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거짓말, 혹은 일관되지 않은 정보를 내가 추론해낸다는 것에 위협을 느낀다. 그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자신의 허점을 파악당했다는 인지를 갖는다. 하지만 나는 그저 ‘사고’를 했을 뿐이다.


이 간극은 단순한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다.

정보를 다루는 방식의 차이, 생각의 깊이와 결의 차이, 그리고 인지 처리 체계의 차이다.


나는 그것을 ‘고차원적 사고 구조’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보통 ‘말’이라는 단편만으로 반응하지만, 나는 그 말이 만들어지는 시스템 전체를 해석한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거나 무섭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고차원적 사고자는 정보를 단층적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문맥, 상위 개념, 비유, 심리적 배경까지 고려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사회적 합의된 신호 체계 내에서만 대화한다. 그들은 효율성과 친밀감을 중요시하며,

“왜 그런 말 했어?”라는 질문에 “그냥”이라고 답한다.


여기서 인지적 비대칭성이 발생한다. 고차원 사고자는 ‘그냥’이라는 말에 의문을 제기하지만, 상대는 그 의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진심으로 다가가려는 의도가 오히려 거리감을 만든다.


타인의 심리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과 친밀해지는 데 장애가 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몰라도 괜찮은 것’에 대한 암묵적 동의 위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너무 많이 보고, 너무 깊이 파악할수록 상대는 자신이 노출된 느낌을 받는다. 이 고립은 감정적 피로를 낳고, 자기 인식과 외부 인식의 불일치에서 오는 존재론적 긴장을 만든다.


그렇다면 고차원적 사고자는 어떻게 타인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그 해법은 단순히 지적 수준을 낮추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다음 세 가지 축에서 조절되어야 한다.


진실: 당신의 해석 능력은 무기가 아니라 선물이다. 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감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그 능력을 개방해서는 안 된다. 감정과 사고의 필터링이 필요하다.

수용: 타인의 단순함을 받아들이는 것. 깊이 없는 대화도 관계의 중요한 한 층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는 결코 자기부정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 속에서 사고의 방식을 유연화하는 지혜다. 모든 대화가 철학이 될 수는 없지만, 모든 관계가 철학적 사유로부터 멀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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