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도 동물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어떤 이는 그것을 겸손의 언어로 사용하고, 또 어떤 이는 인간의 오만을 비판하기 위해 꺼내 든다. 그러나 나는 가만히 되묻고 싶다.
“정말 인간은, 단지 동물일 뿐인가?”
물론 인간도 생물학적으로는 포유류이며, 먹고, 자고, 생존을 위해 싸우며, 유전자를 전달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돌고래처럼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지 못하며, 개미처럼 유기적인 협동을 실현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인간은 스스로를 ‘우월하다’고 여겨왔다. 왜일까?
그 차이는, 단지 지능의 차원일까? 문제를 해결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기술을 만드는 능력? 아니다. 나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바로 상상력이며, 그 상상력을 통해 구성된 믿음이다.
동물은 울지만, 인간은 울음에 이름을 붙이고 시로 만든다. 돌고래는 노래하지만, 인간은 그 노래에 이야기를 담는다. 이해할 수 없기에 기도하고, 볼 수 없기에 믿는다.
개는 주인을 향한 충성을 보이지만, 신을 향한 기도를 드리지는 않는다. 고래는 자식을 키우지만, 죽은 이의 무덤에 꽃을 놓지는 않는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을 사랑한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고, 일어난 적 없는 미래를 계획하고, 상징을 만들어무의미한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 상징 안에 살며, 그 상징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국가, 종교, 이념, 철학, 예술… 그것들은 모두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가 그것에 존재를 부여한 것들이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동물과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차이이다. 동물은 세계에 ‘살지만’, 인간은 세계를 ‘의미화’한다.
이것이 인간의 고통을 만들기도 하고, 구원을 만들기도 한다. 시적 표현으로 바꾼다면 동물은 지금은 살고 인간은 언젠가를 살아낸다.
종교는 그 극단이다. 존재의 외부에 있는 절대적 개념을 향한 사랑. 지각할 수 없는 존재를 향한 믿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살아가는 유일한 동물. 그것이 인간이다. 그 사랑 안에 진정한 ‘인간다움’이 있다. 그것이 곧, 우리가 덕을 지닌 존재임을 증명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인간이 단지 동물이라고 말하는 데 주저한다.
그 말은 사실일 수 있지만, 전부는 아니다. 인간은 동물성과 상상력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모순적 존재다. 그리고 어쩌면, 그 모순 자체가 인간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현실의 끝에서 현실 너머를 그려보는 유일한 생물이다. 우리는 동물이고, 또 그보다 조금 더 먼 것을 품은 존재다. 그 ‘조금 더’가 우리에게 시를 쓰게 만들고, 신을 만들고, 죽음을 넘어서 사랑을 말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