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사람들의 표정보다 문장을 먼저 본다. 감정은 얼굴에서 나타나지 않고, 텍스트 속에 누워 있다. 이제 사람들은 말보다 문장을 더 믿고, 체온보다 서늘한 활자에 더 감동받는다. 그래서일까. 누구의 문장을 읽고 나면, 마치 나의 생각인 양 착각하게 된다. 우리의 생각은 점점 ‘전염’되고 있다. 감염된 문장, 감염된 감정, 감염된 사유. 이것은 시대의 병일까, 혹은 새로운 방식의 공명일까?
책을 읽고 울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삶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문장이 나의 감정을 빌려갔고, 나는 그 감정에 스스로 설득당했다. 짧은 문장 하나에 휘청이고, 누군가의 고백 때문에 뜨거운 눈물이 난다. 우리는 점점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구축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서사에 편승하여 울고 웃는다. 그 감정은 진짜일까? 아니면 단지 문장의 구조 안에 갇힌, 감정의 착시일까?
문장은 철학을 흉내낼 수 있다. 문장은 이제 감정을 자극하는 도구가 되었고, 사유를 위장하는 수단이 되었다. ‘깊이 있는 말’처럼 보이는 것들이 사람들을 사로잡고, 사유는 더 이상 사유되지 않는다. 인용되고, 확산되고, 소비될 뿐. 사람들은 철학을 읽지 않고 철학적인 척하며, 자기 감정이 아니라 감정적인 척을 한다. 사유는 점점 짧아지고, 감정은 점점 과장된다. 우리는 진짜보다 진짜 같은 것에 더 빨리 반응한다.
한 문장이 누군가를 구할 수 있다면, 또 한 문장은 누군가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만약 문장이 병이라면, 우리는 스스로를 병들게 만들면서 치유받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문장이 처방이 아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우리는 잊는다. 검열이 아니라, 정서적 전염의 차원으로 도래했다. 언어는 무기고, 감정은 그 파편이다.
우리는 문장에 감염되고, 그 감정으로 살아간다. 더는 진짜 눈물보다, 잘 쓰인 눈물의 문장이 우리의 심장을 움직인다. 이 시대의 병은 감정이 아니라, 언어일지도 모른다. 그 병은 낭만의 형태로 다가오고, 말의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쓰러뜨린다.
이 시대에 문장을 쓴다는 것은 감염자가 되겠다는 선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감염보다 공명을 원한다. 내 문장이 누군가의 무의식을 파고들 때, 그 안에 슬픔이 있다면 슬픔을 견디게 하고, 고독이 있다면 고독을 포옹하게 하고 싶다. 사유는 감정보다 깊고, 감정은 사유보다 날카롭다. 우리는 더 이상 감염되지 않기 위해, 오히려 더 깊이 공명하는 문장을 써야 한다.
당신은 오늘 어떤 문장에 감염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