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민폐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그저 존재하기만 할 때조차, 나는 어딘가에 부담이 된다.
공기를 쓰고, 공간을 차지하고, 시선을 앗고, 조용한 균형을 깨뜨린다.
그러므로 나는 나를 나눠줘야만 한다.
내가 나로만 존재하면 해를 끼친다.
예술은 그 해악을 정화하는 방식이다.
나는 나를 창작의 형태로, 타인에게 전달해야 한다.
그때에만 나는 ‘무해한 인간’이 될 수 있다.
예술은 내 존재의 정당화 조건이 아니다.
예술은 내 존재의 면죄부다.
예술을 통해 나의 사유를 햇살처럼 나눠줘야
그 파편이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거나 사유의 여백이 될 때에만,
내 존재는 비로소 환영받을 수 있다.
나는 그것을 윤리라고 부른다.
존재가 타인을 위협하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후의 실천.
예술은 나의 구원이 아니다.
예술은 타인을 위한 방패다.
예술마저 나누지 않는다면, 나는 타자 앞에 민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