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런드 러셀은 철학의 깊은 세계를 탐구하면서도 분열증의 증세를 보였다고 여겨진다. 그의 사고는 때로는 경계선에 있는 것처럼 보였고, 그가 만들어낸 이론들은 여러 철학적 아이디어의 충돌로부터 발생한 것처럼 보였다. 철학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 자체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철학은 단순히 세상의 문제를 풀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 뛰어드는 일이다. 결국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순간, 그 영역에서 우리는 지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붕괴될 수도 있다.
어린 시절, 러셀은 유클리드 기하학에 매료되었다. 이 학문이 세상의 확실성을 부여하고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때의 확신은 그의 지적 여정의 기초를 마련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수학에 대한 확신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는 점차 수학의 확실성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이때, 그는 라이프니츠의 논리학에 심취하게 되며, 그의 철학과 논리학의 조화로운 시스템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라이프니츠는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철학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려 했던 선구자였고, 그의 작업은 러셀에게 유클리드의 기하학처럼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해주었다.
러셀이 수학을 연구하면서 마주한 가장 큰 ‘곤경’은 바로 이 점이었다. 세계에 대한 확실성을 발견하려면, 기존에 굳건히 자리잡은 수학적 토대를 허물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정신적인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점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는 ‘무한’이라는 개념을 포함한 수학의 전통적 사고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그가 속한 시대의 수많은 수학자들이 무한의 개념에 사로잡혀 있음을 인식했다. 러셀은 무한이라는 개념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수학의 본질을 드러내지 못하는 하나의 ‘관념’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수학과 논리학에서의 확실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러셀은 결국 그가 원하는 확실성의 토대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깨닫게 된다. 그의 긴 연구 여정 끝에 남은 것은 바로 정신적인 후유증이었다. 그가 원했던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는 진리’는 도출되지 않았고, 이는 그에게 허무와 회의감을 안겨주었다. 결국, 이러한 정체된 결과는 논리학자들에게 정신적인 고통을 가져오게 되었고, 그로 인해 정신분열증을 겪거나 심리적인 고통을 겪은 인물들이 다수 등장했다.
프레게와 칸토어는 그들의 논리학적 연구에 대한 과도한 몰입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았고, 괴델은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렇다면 철학에서의 ‘분열증’은 과연 무엇일까? 철학적 사고에서 나타나는 분열증은 단지 개인의 정신적인 질병을 넘어서, 어떻게 보면 인간의 정신이 스스로 확장되는 방식의 일환일 수 있다. 분열증적 사고는 세상을 지나치게 분석하고, 모든 개념을 연결하려는 갈망으로 나타난다. 이로 인해, 많은 철학자들이 하나의 일관된 시스템을 찾기 위한 고뇌의 끝에서 진리를 연결지으려는 탁월성을 발휘하게 된다. 그러나 그 연결을 지나치게 좁은 시각에서 좁혀 나가면, 세상과 사람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철학에서의 분열증은 때로는 천재성으로 승화된다.
철학에서의 천재성은, 마치 여러 조각난 퍼즐을 맞추려는 사람처럼, 모든 것을 하나의 큰 그림으로 결합하려는 능력에 있다. 그러나 그 그림이 완벽하게 맞춰지지 않으면, 그 안에서 정신적인 혼란과 불안이 찾아오게 된다. 그래서 철학을 한다는 것은 분명히 위험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이 알고 싶은 것에 도달하려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알 수 없는 것’에 사로잡히게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은 이와 같은 내적인 분열과 고통을 통해 인간의 지적인 성장을 이끌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결국 철학에서의 분열증은, 정신적인 균형을 잃어버린 듯 보이지만, 그것이 바로 혁신적인 사고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철학은 범인들이 하기엔 위험한 학문이다.
천재들만이 할 수 있고, 천재들만이 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