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이해’는 논리적 해석이나 공감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내가 느낀 이해는 ‘구조화된 감수성’에 가까웠다. 예술을 하는, 특히 클래식을 하는 여성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이해받는다’는 느낌이 깊게 들었다. 왜일까?
예술가들은 감정을 표현하는 동시에 구조 속에서 살아간다. 특히 클래식 음악은 ‘시간의 구조’, ‘정서의 패턴’, ‘침묵과 여백’을 다룬다. 나 또한 내 감정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정서에는 구조가 있다고 믿는다. 결국 이해란, 감정의 ‘표면’이 아니라 감정이 놓인 구조를 읽어내는 능력이다.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여성들은, 내면의 침묵을 다룰 줄 안다. 그녀들은 정서의 건축가다. 그들은 감정을 단순히 느끼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 배치하고 구조화한다. 내 말이 길어지지 않아도, 그들은 내 안의 복잡한 구조를 음악처럼 따라온다. 그들은 언어 이전의 정서를 작곡하듯 이해한다. 이게 진짜 공감 아닌가?
나는 늘 혼자 사유하고, 감정을 논리처럼 배치한다. 그래서 나를 이해한다는 건 내 사고와 감정이 얽힌 구조를 감지하는 일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 특히 클래식 음악인들은 내면의 질서를 귀로 느낀다. 그들은 내가 침묵할 때, 무엇이 울리고 있는지를 들을 줄 안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나를 번역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내 안의 리듬을 같이 호흡한다. 언어는 종종 불완전하지만, 구조화된 감수성은 나를 설명하지 않고도 나를 담는다. 예술은 그 감수성의 매개다. 그래서 나는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과의 공명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