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김에 대한 찬양

by 신성규

아름다운 이들은 살아 있는 동안, 존재만으로 사회로부터 환대를 받는다. 이 환대는 보상일까, 혹은 함정일까? 질문은 여기서 시작된다. 세상은 아름다움을 직관적으로 보상한다. 그들의 존재는 분석되기도 전에 숭배된다. 그러나 진리는 언제나 고통의 자식이다. 아름다움은 고통을 미룬다. 진리는, 대개 고통과의 밀월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못생김은 사회가 부여하는 구조적 차별이다. 관심 받지 못하고, 무시되고, 배제된다. 그러나 그 안에서 피어난다.


“왜 나는 배제되는가?”

“왜 타인은 조건 없이 사랑받는가?”


못생긴 자는 일찍이 부조리를 자각한다. 그들은 진리를 탐구할 내면의 공간을 갖는다. 세상의 무관심이, 때로 사유의 자유를 허락한다.


예쁘다는 것은, 세상이 당신의 얼굴에 대고 “네가 옳다”고 속삭이는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이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비판받지 않고,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이는 철학자가 진리를 탐색하는 고유의 심리, 즉 “나는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을 앗아간다. 진리 탐색의 가장 강력한 동기는 존재의 결핍이다.


못생김은 고통이다. 그러나 그 고통이 사유를 낳는다. 진리는, ‘고통스럽게 세상을 바라보는 자’의 눈에 먼저 도착한다. 그들은 조건 없는 사랑이 주어지지 않음을 알고, 세상의 평등이 허상임을 안다. 그로부터 탐색이 시작된다.


못생김은 선물이 아니다. 그러나, 진리에 이르는 조건이 될 수 있다. 아름다움은 저주가 아니다. 그러나, 자기 기만의 마취제가 되기 쉽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못생김은 아프다.

하지만 그 아픔은

진리를 얻는 고요한 문이기도 하다.

그 누구도 원치 않지만,

누군가는 거기서 눈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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