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정을 견딜 수 없이 느낀다.
기쁨도, 슬픔도, 마치 온몸으로 감전된 듯 퍼지고, 그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사람들은 종종 “예민하네” 혹은 “별일도 아닌데”라고 말하지만,
내게 있어 ‘별일 아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말, 하나의 표정, 하나의 사건이
내 안에서 수천 갈래의 길을 틔우고,
그 끝에는 항상 고통이라는 감정이 대기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나는 병에 걸린 게 아닐까?
이 감정이라는 불청객은 왜 나에게만 이렇게 깊고 진하게 들러붙는가.
왜 나는 며칠이고 사소한 일 하나에 붙잡혀 고통스러워야 하는가.
왜 나는 내가 싫어지는가.
나는 결국, 감정을 엄청나게 느끼는 사람이다.
기쁨도, 슬픔도, 세상의 잔기운 하나하나가 내 안에서 파문을 일으킨다.
내게 감정은 단순한 반응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전율이며, 생존의 방식이다.
그러나 이 감각은 나를 살리는 동시에, 나를 갉아먹는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한마디, 스쳐가는 시선, 고요한 틈.
그들은 그 모든 것을 지나치고 살지만, 나는 그것에 붙들린다.
그 말 한마디가 며칠을 지배하고, 그 표정 하나가 나를 무너뜨린다.
나는 과도하게 느끼고, 깊이 반응한다.
나는 ‘지나치게 살아있는’ 인간이다.
나는 때때로 생각한다.
이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약물로 그것을 잠재워버릴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 순간, 내 안의 어떤 창문도 함께 닫혀버릴 것이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창작. 공감 없는 예술.
그건 나의 예술이 아니다.
감정은 나에게 병이다. 그러나 동시에 감각이다.
이 모순된 구절은 내 존재를 가장 정확히 드러낸다.
나는 스스로를 미워하면서도, 그 미움 속에서 글을 쓰고,
세상의 균열을 감지하고,
어떤 이가 놓친 눈물을 내 안에서 흘린다.
이 감정을 없애면,
나는 나일 수 있을까?
이 깊이를 제거하면,
나는 아무 말도 쓸 수 없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채, 그저 살아있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나는 감정을 ‘병’이라 부르면서도,
사실은 그 병을 통해 살아 있음을 느낀다.
내가 만든 문장, 내가 떠올린 상념, 내가 견딘 밤들.
그 모든 것들은 내 감정의 부산물이었고,
그 안에서 나는 나의 예술성을, 나의 사유를, 나의 존재를 보았다.
그러니 나는 병든 감정을 껴안기로 한다.
그것은 ‘병’이라 불리기에는 너무도 아름다운 심연이기 때문이다.
그 심연이 나를 삼킬 때조차,
나는 그곳에서 말의 씨앗을 얻는다.
감정은 나를 망가뜨리기도 하고, 나를 세우기도 한다.
그것은 감옥이자, 재료이며, 날개다.
나는 이 감정을 억누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흐르게 하되, 휩쓸리지는 않게.
불붙이되, 나를 태우지는 않게.
그렇게, 나는 나의 감정을 예술로 바꾸는 법을 배워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