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너머의 인간

by 신성규

우리는 늘 시간 속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시계의 바늘, 해의 움직임, 약속된 순간들. 그러나 진정한 몰입의 상태에 들어갈 때, 이 절대적인 시간은 기묘하게 증발한다.

몇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공간감조차 사라진다. 사람은 더 이상 ‘외부의 시간’에 있지 않다. 그 순간 그는 내면의 시간, 아니, 시간이 사라진 자리에 존재한다.


이 현상은 단순한 심리적 착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뇌가 재구성된 상태다. 세계를 측정하던 내면의 시계는 작동을 멈추고, 오직 몰입의 대상과 자신 사이의 순환만이 흐른다. 이 때 인간은 ‘시간의 지배를 받는 존재’에서, 오히려 ‘시간을 지배하는 의식’으로 변모한다.


몰입은 결국 하나의 세계관 붕괴다. 시간, 효율, 생산성, 관리라는 구조화된 틀 위에 살던 인간이, 그 틀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다. 몰입은 인간에게 잠시나마 우주적 질서의 감옥에서 탈출할 자유를 허락한다.


그리고 나는 이 짧은 해방감 속에서, 인간이 단지 시공간에 속박된 존재가 아님을 느낀다. 오히려 인간의 의식이 질서를 재구성하는 주체일 수 있음을 본다.


몰입이 시간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순간이라면, 예술 창작과 수행은 그 무너진 질서 위에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행위다.


예술가는 악보 위에 음표를 그리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시간의 흐름을 멈춘 후, 그 멈춤 속에서 떠오른 형상들을 외부로 끌어올리는 존재다. 그림, 소설, 음악, 춤… 모두는 뇌 속의 리듬과 시간 감각이 일반 질서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탄생한다.


수행자 또한 마찬가지다. 수도자, 선승, 명상가, 혹은 사유하는 철학자. 그들은 하나같이 일상의 시간 질서에서 벗어나는 법을 훈련한다. 하루 세 끼, 해 뜨고 해 지는 리듬에서 나와, 오직 호흡, 사유, 무(無)로 돌아간다. 그들이 경험하는 것은 단순한 느림이 아니라, 절대적 시간에서 벗어난 의식의 자유다.


이때, 인간은 단지 뇌라는 생물학적 기계가 아니라, 우주의 구조를 재조직할 수 있는 지성이 된다. 우리는 더 이상 피동적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시간을 해체하고, 질서를 다시 그리는 존재일 수 있음을 이 몰입의 상태는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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