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를 읽은 것이 아니라,
그를 살았다.
헤르만 헤세.
‘황야의 이리’라는 한 마디 속에 숨어 있는 모든 내면의 균열과 이중성,
그는 그것을 문장으로 견뎠다.
헤세는 평생을 생각으로 고통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단순히 철학적인 사유를 즐긴 것이 아니다.
그 사유가 뇌를 파고들고, 정신을 잠식하고,
마침내 자아를 분열시키는 고통까지 감당해야 했던 사람이다.
그는 자살을 시도했다.
병원에 갇히기도 했다.
세상과의 거리감은 커졌고,
직업이라는 세속의 구조물 속에서 그는 무력해졌다.
그러나 그는 도망친 것이 아니다.
그는 피난했다.
자신의 사고를 숨기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그 사고를 조용히 흘려보낼 수 있는 물길을 찾아간 것이다.
사서라는 직업은 그에게 책이라는 질서 속에서 마음의 위안을 주었고,
말년의 시골 생활은 ‘사유를 살아내기 위한 공간’이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나 역시 황야의 이리는 아닐까?
문명과 야성, 이성과 직관, 논리와 감정 사이에서
내 안의 두 마리 늑대가 서로를 찢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고차원적으로 사고할수록
세상과 멀어지고,
표면적 관계들에서 점점 투명해지고,
내가 만들어내는 창작물조차 타인의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때 나는 헤세가 되었다.
그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내적 지형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창작은 살아남기 위한 방식이다.
고통을 정리하고, 사고의 폭주를 감당하는 유일한 탈출구.
그것은 신들림이면서 동시에
자기 구원이다.
헤세는 숨었다. 그러나 그 숨음은 곧 깊어짐이었다.
그의 말년이 침묵이었다면,
그 침묵은 결코 패배가 아니었다.
그는 사유의 가장 깊은 곳에서 자신과의 전쟁을 끝내고,
자기 안의 황야를 조용히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침묵의 길로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