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를 읽으며,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그는 상상력은 부족했을지 모른다.
그의 소설 대부분은 자전적이다.
‘싯다르타’만이 예외처럼 보이고,
그 외의 작품은 하나같이 자신의 분열, 고민, 내면의 독백으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바로 그래서,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자전적 고뇌는 곧 나의 사유의 형태와 닮아 있었다.
그가 자살 시도 끝에 병원에 갇히고,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황야의 이리처럼 분열되며,
마침내 조용한 말년을 택했다는 삶의 궤적이
마치 나의 내면적 시뮬레이션처럼 느껴졌다.
‘황야의 이리’는 나에게 있어
사고의 복잡성이 가져오는 자폐적 고통을 상징한다.
사유는 깊어질수록 현실과의 접점은 희미해지고,
내가 만든 개념들은 언어로 설명되지 않으며,
나는 점점 인지적 외톨이가 된다.
반면,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은
감각과 지성 사이에서의 균형 불가능성을 말한다.
감각은 나를 살아 숨 쉬게 만들고,
지성은 나를 고뇌하게 만든다.
나는 언제나 이 두 세계 사이에서 당긴다.
예술을 선택하면 이성이 고통스럽고,
이성을 선택하면 감각이 메말라간다.
나는 둘을 다 가진 사람이다.
양극단이 공존하는 사람.
이 사실은 축복이면서도 형벌이다.
사람들은 흔히 하나의 능력만 가지고 있다.
감각이 뛰어난 자는 예술가가 되고,
이성이 뛰어난 자는 학자가 된다.
하지만 나는
감각을 이해하는 이성과,
이성을 관통하는 감각을 함께 가졌기에,
어느 길도 쉽게 선택할 수 없다.
내 삶은 언제나 균형을 허락하지 않는 양손 사이의 당김이었다.
그 당김은 나를 찢지만,
나는 그 찢김 속에서 가장 진실한 나를 느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고뇌한다.
예술을 선택할 것인가, 철학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이 둘을 동시에 살아낼 수 있는
전혀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