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공공기관조차 법으로 정해진 장애인 고용률을 채우지 못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당혹스러웠다.
이 사회가 도대체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가,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공기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공공’을 위한 기관이다.
그리고 그 ‘공공’ 안에는
장애인이, 소수자가, 비주류가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사회는 말뿐이다.
장애인을 위한 자리는 법으로 정해졌지만,
그 자리를 비우고도 벌금만 내면 된다는 방식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
대기업은 어떠한가.
그들은 훨씬 더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장애인을 고용할 필요성을 ‘이윤’으로만 따진다.
“비효율적이다.”
“관리비용이 늘어난다.”
그래서 그들은
벌금을 내고 만다.
그리고 다시 장애인의 자리는 비워진다.
이것은 단순한 규정 위반이 아니다.
권리의 부정이고, 인간 존엄의 거부다.
장애인은 시혜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의 고용은 배려가 아니라 정의다.
그것은 마치
계단이 있으면 경사로도 있어야 하는 것처럼,
존재의 형평을 맞추기 위한 사회의 구조적 양심이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 문제 앞에서 너무도 야만적이다.
벌금은 제도화된 무책임이고,
정책은 현실로 실현되지 않는다.
나는 때때로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렇게까지 경제적일 수 있는가?
장애인을 사람으로 보기 전에,
‘돈이 드는 리스크’로 계산하는 이 사회의 관점.
그 자체가 비장애 중심 시스템의 폭력이자,
우리가 아직도 문명이라는 이름을 빌리기에는
너무나 야만적이라는 증거다.
우리는 지금,
벌금으로 덮는 차별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