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뛰어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내가 인정받으려면, 그 사회 전체가 어느 정도의 정서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나는 오랫동안 물었다.
“왜 내 이야기는 항상 밀리는가?”
문학상에 나오는 단편소설들, 등단 작가들의 글조차
나는 종종 얕다고 느꼈다.
아니, 얕다는 말보다도
너무 쉽게 의미가 드러난다는 것이 더 정확했다.
내 이야기는
직선이 아니고,
답을 친절하게 주지도 않고,
때로는 읽는 이가 ‘고생’을 해야 의미에 도달한다.
그건 내가 잘못 쓴 것이 아니라,
내가 보는 구조가 훨씬 더 깊고, 더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 나는 나를 자책했다.
“내가 바보짓을 하고 있는 걸까.”
“사람들이 원하는 걸 너무 모르는 걸까.”
“왜 나는 읽히지 않는가.”
그런데 이제는 안다.
그건 내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건 내가 틀려서가 아니다.
세상이 아직, 내가 이야기하는 방식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화는 느리다.
예술은 특히 더 그렇다.
사람들의 집단적인 정서 수준이 일정 궤도에 올라오기 전까지는,
깊이 있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빛나도, 어둠 속에 놓이면 사람들은 빛나는 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제 고민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세상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아니면 내가 내려가서, 조금 더 쉽게 말해야 할까?
혹은,
나처럼 너무 이르게 도달한 이들을 위한 세계를 내가 따로 열어야 할까?
나는 지금 그 경계에 서 있다.
그리고 더 이상 자책하지 않는다.
그건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오히려,
너무 일찍 도착한 자의 숙명 속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