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언제 도달하는가

by 신성규

내가 뛰어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내가 인정받으려면, 그 사회 전체가 어느 정도의 정서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나는 오랫동안 물었다.

“왜 내 이야기는 항상 밀리는가?”

문학상에 나오는 단편소설들, 등단 작가들의 글조차

나는 종종 얕다고 느꼈다.

아니, 얕다는 말보다도

너무 쉽게 의미가 드러난다는 것이 더 정확했다.


내 이야기는

직선이 아니고,

답을 친절하게 주지도 않고,

때로는 읽는 이가 ‘고생’을 해야 의미에 도달한다.

그건 내가 잘못 쓴 것이 아니라,

내가 보는 구조가 훨씬 더 깊고, 더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 나는 나를 자책했다.

“내가 바보짓을 하고 있는 걸까.”

“사람들이 원하는 걸 너무 모르는 걸까.”

“왜 나는 읽히지 않는가.”


그런데 이제는 안다.

그건 내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건 내가 틀려서가 아니다.

세상이 아직, 내가 이야기하는 방식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화는 느리다.

예술은 특히 더 그렇다.

사람들의 집단적인 정서 수준이 일정 궤도에 올라오기 전까지는,

깊이 있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빛나도, 어둠 속에 놓이면 사람들은 빛나는 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제 고민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세상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아니면 내가 내려가서, 조금 더 쉽게 말해야 할까?

혹은,

나처럼 너무 이르게 도달한 이들을 위한 세계를 내가 따로 열어야 할까?


나는 지금 그 경계에 서 있다.

그리고 더 이상 자책하지 않는다.

그건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오히려,

너무 일찍 도착한 자의 숙명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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