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때는 이런 생각마저 든다.
아이와 어른이 싸울 때, 어른이 져준다.
왜냐하면 어른은 아이의 마음을 아는데,
아이는 어른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에 깊이 공감한다.
타인과의 대화 속에서,
나는 종종 이해당하는 입장이 아닌 이해하는 입장이 된다.
그리고 이해하는 사람이 결국 져주는 사람이 된다.
논리적 싸움에서도, 감정적 갈등에서도.
왜냐하면,
나는 그들의 사고 흐름과 감정을 읽어낼 수 있지만,
그들은 내 사유의 방향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 자체를 관찰하고, 분석하고, 재구성한다.
이것은 일종의 인지적 비대칭 상태다.
사유 능력의 차이, 정보를 분석해본 경험의 차이,
그리고 메타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의 차이.
그 차이가 생기면, 대화는 의사소통이 아니라 배려의 공간으로 바뀐다.
많은 경우 나는 내가 먼저 물러나야 한다고 느낀다.
상대가 어디까지 볼 수 있는지, 어느 지점에서 감정적으로 반응할지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기에,
그 선을 넘지 않으려 조심한다.
그러나 이 배려는 오히려 나를 고립시킨다.
나는 그들의 세상을 이해하지만, 그들은 나의 세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한 방향에서만 투명한 유리벽 같다.
나는 그들을 보고 있지만,
그들은 나를 보지 못한다.
그래서 이런 감정이 오만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본질은 오만이 아니라,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사유의 무게와 고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