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예술이란 무엇인가

by 신성규

우리는 종종 예술을 감상하며 말한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지?”, “결론은 뭔가요?”,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이 질문들 속에는 하나의 전제가 숨겨져 있다.

예술이란 어떤 메시지나 답을 줘야 한다는 믿음.

그러나 정말 그럴까?


나는 오히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좋은 예술은 결코 답을 주지 않는다.

좋은 예술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의 여운 속에, 감상자는 자신을 발견한다.


답을 주는 예술은 관객을 통제한다.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어떤 결론에 도달해야 하는지까지

작가가 설계해 놓은 경로를 따라가게 만든다.


그것은 선동이고, 유도이고, 프로파간다다.

정치적 구호처럼, 마치 ‘이게 진리다’라며 박제된 정답을 내민다.

하지만 삶은, 인간은, 세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질문을 던지는 예술은 설명하지 않는다.

그림 한 장, 영상의 침묵, 음악의 불협화음 속에서

관객은 당혹감과 침묵을 경험하게 된다.


왜 이 장면은 불편한가?

왜 이 음악은 멜로디가 없이 끝나는가?

왜 나는 이 이미지 앞에서 말을 잃는가?


좋은 예술은 인간 존재의 경계에 머문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성의 언어로는 포착할 수 없는 질문을 남긴다.

질문을 던지는 예술, 그것은 인간의 ‘틈’을 건드린다


아방가르드는 언제나 낯설고 불친절했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이 그랬고,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도,

백남준의 TV 불상도 그랬다.


이들은 결코 “예뻐 보이기 위해” 존재하지 않았다.

이해되지 않음으로 존재했다.

이해되지 않음은 바로 ‘기존 감각 체계에 대한 저항’이다.


그러므로 좋은 예술은,

무언가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흔들’어야 한다.

그 질문은 때로 정치적이고, 때로 존재론적이며,

때로는 아무 말 없이 한 줄의 쉼표처럼 존재한다.


“이건 왜 불편하지?”

“나는 왜 이 장면에서 눈물이 나지?”

“나는 이 메시지를 왜 받아들이기 싫지?”


이 질문들은, 관객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그 예술은 단지 거울이 되었고,

감상자는 그 거울 앞에서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이 진짜 예술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정답을 요구받고, 올바른 감상을 학습해왔다.

그러나 예술은 해설을 거부한다.

그것은 살아 있는 감정이고,

정답 없는 세계에 대한 한숨이고,

‘이래도 괜찮은가’라는 침묵 속의 저항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를 불편하게 하고,

설명되지 않으며,

어디에도 귀속되지 않은 예술 앞에 오래 머문다.


왜냐하면 그 침묵 속에

내가 질문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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