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우리 사회의 예술 감수성의 평균값을 측정하라면
딱 “마동석” 같다고 느낀다.
힘 있고, 직선적이고, 분명하다.
그러나 섬세하지 않다.
감정보다 액션, 사유보다 즉답, 침묵보다 효율.
물론 마동석은 그 자체로 훌륭한 배우다.
하지만 그를 감싸는 문화적 열광은 묘한 씁쓸함을 안긴다.
그의 캐릭터는 우리 시대가 선호하는 감각을 너무 잘 대변한다.
단순함, 직진, 선악의 명료함, 빠른 결론.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복잡한 예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예술은 원래 모호하고, 불편하며,
때로는 해석되지 않아야 마땅한 질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런 침묵과 여백을 견디는 훈련이 부족하다.
그래서
시는 설명되어야 하고,
미술은 예뻐야 하며,
음악은 듣기 좋아야 하고,
영화는 결말이 깔끔해야 한다.
예술이 질문을 던지는 장르가 아니라,
즉시적인 쾌락과 동의를 유도하는 산업의 일부가 된 것이다.
‘예술을 대중화해야 한다’는 이름 아래,
우리는 예술을 점점 더 간편하게, 해설 가능하게, 유쾌하게 만들어 왔다.
그러는 사이, 예술의 불편함, 감정의 입체성,
그리고 사유의 모호함은 설 자리를 잃는다.
마동석은 잘못이 없다.
그는 사회의 욕망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일 뿐이다.
문제는, 우리가 더 이상
말 없는 조형물 앞에서 오래 서 있지 않는다는 것,
낯선 감정 앞에서 스스로를 흔들지 않는다는 것,
복잡한 문장과 메타포를 해독할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예술은 근육이 아니다.
예술은 ‘견디는 감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