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케, 그는 독일어를 다루되, 그 언어의 무게를 섬세함으로 변주한다.
독일어는 일반적으로 무거운 문법, 엄격한 구조, 추상성의 사유를 품는다.
하지만 릴케의 문장에서는 이런 논리적 질서보다
결핍과 고독, 감각의 여백과 우회가 먼저 떠오른다.
그는 말을 설계하지 않고, 말에 사유가 스며들도록 허용한다.
이는 독일적 이성보다 프랑스적 감성,
혹은 라틴적 멜랑콜리에 가까운 정서다.
릴케는 바그너보다는 드뷔시를 닮았다.
쇼펜하우어보다는 말라르메에 가깝다.
그의 시는 때때로 문장이 아니라 공기의 흐름 같고,
의미가 아니라 존재의 떨림을 건드린다.
그는 빈 출신이었지만 파리에서 로댕과 교류하며
‘눈이 아니라 손으로 조각을 느끼는 방식’에 몰입했다.
그는 조각처럼 시를 쓰는 법을 배웠다.
형태를 드러내는 대신 형태가 사라지는 순간의 감각을 붙잡았다.
릴케는 말테의 일기에서 “삶의 질문들을 살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시는 존재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존재의 체험을 기입하는 일기장이다.
릴케는 국적보다 감성의 계보로 읽혀야 한다.
그는 국가나 언어의 경계 너머에서 시를 쓴 시인이었다.
독일어로 쓰되, 감각의 언어는 국경을 거부했다.
릴케는 결국,
시가 언어보다 먼저 정서를 따라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예외적인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