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서사 안의 여성적 감정 구조
’위대한 개츠비‘는 남자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이 작품은 오히려 여성적 서사, 혹은 여성적 감정 구조에 가깝다. 개츠비는 남성이지만, 그가 보여주는 감정의 궤적은 전통적인 남성 영웅 서사와는 다른 길을 걷는다.
개츠비는 승리하지 않는다. 정복하지 않는다. 되려 기다리고, 갈망하며, 상처받는다.
그는 이룩한 부를 통해 사랑을 회복하려 하지만, 그 사랑은 과거에 묶여 있고, 현실 속 데이지는 환상 속 데이지와 다르다.
개츠비는 성취가 아니라 결핍을 동력으로 움직이는 인물이다.
이는 고전적인 여성 서사와 유사하다. 고전적인 여성 서사는 종종 기다림, 희생, 상처, 이상화된 사랑을 중심에 둔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사랑했지만, 동시에 데이지가 되고 싶었다.
즉, 사랑받는 존재, 욕망의 대상, 모두의 시선을 받는 존재, 순간을 통째로 아름답게 만드는 존재.
그는 데이지에게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니라, 데이지라는 존재의 ‘심미적 가치’를 닮고자 했다.
개츠비는 전통적인 남성 주체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중심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타자의 시선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갈망하는 존재이다.
그는 주체가 되기보다, 대상이 되고 싶어 했다.
이때 대상은 소외된 객체가 아니라, 모든 아름다움의 중심에 놓인 ‘가치 있는 객체’, 즉 여성적 위치의 이상화된 이미지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통해 자신이 가질 수 없는 ‘시간’을, ‘과거’를, ‘이상’을 되찾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영원한 사랑을 기다리는 여성 서사의 주인공처럼,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을 품는 것이었다.
그는 사랑의 실재보다, 사랑을 둘러싼 심상과 이미지에 중독된 인물이다. 이 점에서 개츠비는 자아를 잃고 타자에게 녹아드는 전형적인 여성적 감성의 경로를 따른다.
개츠비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데이지가 아니다. 그는 데이지와 함께하는 장면 자체, 그 아름다운 ‘순간’을 원한다.
시간이 멈추는 듯한 정적, 모든 것이 의미를 가지는 감정의 정점.
그가 그토록 원한 것은 사랑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랑의 풍경이 주는 미학이다.
피츠제럴드는 ‘남성적 주체’ 안에 ‘여성적 감성’을 이식한 작가였다.
그의 글은 섬세하고 다정하며, 동시에 허망하고 찬란하다.
개츠비는 현대적인 남성 영웅이 아니다. 그는 시대의 남성적 서사에 포획되지 못한 감정의 주체이고,
그로 인해 비극적이지만 동시에 가장 인간적이다.
개츠비는 실패했지만, 그 실패의 아름다움 안에 우리는 삶의 진실을 본다.
그리고 그 진실은 종종 여성적 감성, 혹은 상처받을 수 있는 인간의 감수성 속에서 발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