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존중하지 못한 문명들에 대하여

by 신성규

나는 종종 사람들의 사상이 얼마나 편협한지를 느낀다. 특히, 국가나 문명에 대한 감정적 태도에서 그것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중국과 인도를 향해 ‘미개하다’고 말하고, 프랑스를 향해 ‘무질서하다’며 비난한다. 그 말 속엔 단순한 불만을 넘어선, 문명 자체에 대한 무례와 무지가 담겨 있다.


중국은 오천 년 문명의 기틀을 이룬 대륙이고, 인도는 사유와 영성, 철학이 살아 숨 쉬는 땅이다. 프랑스는 근대 정신과 예술, 혁명의 중심이었다. 우리가 그들을 평가하기에 앞서, 우리는 과연 이 문명들을 제대로 ‘경험’해본 적이 있는가?


많은 사람들은 질서 있고, 깨끗하고, 안전하며, 일정이 잘 짜인 관광지를 선호한다. 계획된 동선 안에서 움직이고, 불확실성을 피하며, 모든 순간이 ‘인증 가능한’ 사진으로 남겨져야 안심한다. 여행은 휴식이자 탐험이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또 하나의 과업이 되었고, 강박적인 소비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문명은 강박적으로 관리된 공간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진짜 문화는 때때로 혼란스럽고, 낯설고, 불편하다. 그 불편함을 통과해야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우리는 과거, 외부로부터 “개고기를 먹는 야만적인 민족”이라 조롱받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부 지역의 관습이 전체 문명으로 일반화되었고, 그것은 폭력이었다. 그 같은 편견의 피해자였던 우리가 이제는 다른 문명을 향해 똑같은 잣대를 들이밀고 있다. 어떤 문화든 일부를 보고 전체를 재단하는 행위는 또 다른 형태의 식민적 시선이다.


중국의 혼돈 속에는 질서가 있고, 인도의 복잡함 속에는 사유의 깊이가 있으며, 프랑스의 무질서 속에는 인간을 향한 열망이 담겨 있다. 타 문화의 다름을 단지 ‘불편함’으로 치부하는 태도는, 우리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진정한 여행이란, 자신이 가진 질서의 틀을 깨는 경험이다. 낯선 질서에 노출되고, 그것을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우리는 세계와 접속한다. 우리가 존중하지 않는 문명은, 사실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문명일 뿐이다.


문명을 향한 존중은 선택이 아니라 필요다. 그것은 우리가 더 넓은 인간성을 배우기 위한 전제이며, 편협한 사유에서 벗어나기 위한 문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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