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득 멈춰 선다.
너무나도 쉽게 허물어지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묻는다.
“나는 왜 아직도 이 순수성을 지키고 있는가?”
도덕은 강자의 무기다.
그렇게 말하는 시대다.
욕망을 따르는 것이 자유이며,
가벼움이 미덕이 된 세상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토록 무거운 것을 짊어지고 있는가.
나는 늘 극단적이다.
중간이란 없다.
선을 지키면 끝까지 지키고,
무너지면 끝도 없이 무너진다.
그래서 타락은 나에게 단순한 유희가 아니다.
그것은 지하로 떨어지는 일이다.
나는 감각의 천국과 도덕의 지옥 사이에서 외줄을 걷는다.
흔들릴 때마다, 나는 내 안의 악을 본다.
그리고 동시에, 내 안의 선이 얼마나 약한지를 본다.
나는 보았다.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타락한다.
그저 아무렇지 않게, 너무도 쉽게 무너지는 모습들.
지킬 이유도, 참을 이유도 없는 듯이.
그 모습을 볼 때,
나의 분노는 그들의 가벼움 때문이 아니다.
그 무게의 차이에 대한 부당함 때문이다.
왜 나는 이토록 지키고 있는데,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내려놓는 것을 미화하는가?
나는 스스로를 단련하며 살아왔다.
고요한 방 안에서, 내 안의 욕망과 싸우며.
나는 안다.
욕망을 제어하는 것은 본능을 따르는 것보다
몇십 배는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타락이란 단어는 나에게 낭만이 아니다.
나는 그것을 지하의 감옥으로 본다.
한 번 무너지면 나는 다시는 올라오지 못할 것이다.
내가 얼마나 깊이 파고드는지를 알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안의 결벽을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스스로를 속이지 못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 고결함을 알아보지 않는다.
오히려 조롱하고, 유난스럽다 말한다.
그리고 나는 그 차이에 고통받는다.
그래서 나는 자주 혼자 고독 속에 머문다.
사람들과 섞이는 순간
내 예민한 촉각은 지나친 감각을 흡수해
나를 망가뜨릴 준비를 한다.
나는 가끔 분노한다.
지켜봤자 아무도 모르는 이 결백을
왜 나만 이토록 고통스럽게 지켜야 하는가.
그렇다고 놓아버릴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 순간, 나는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욕망을 따르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선택이 내가 나로 남을 수 있는 마지막 선임을 알기에
차마 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다.
타락은 이제 ‘잘 살아보자’는 말로 포장된다.
무너지는 것은 낭만이고,
욕망은 솔직함으로 미화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무너질 수 없다.
나는 그 정직한 타락보다
거짓 같은 순수를 택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나는 분노한다.
왜냐하면 나는 알기 때문이다.
이 모든 걸 ‘견뎌야 할’ 이유가 나에게만 주어졌다는 것을.
나는 타락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강해서가 아니라,
나에게 허락된 길이 그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순수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끊임없이 고뇌하는 사람이다.
도덕적 이상을 좇지만,
그 이상은 나에게 언제나 도달하지 못할 고지처럼 멀다.
그러나 바로 그 고뇌가
나를 더럽힘으로부터 막아주는 유일한 수단이다.
나는 믿는다.
고뇌 없는 순수는 공허하고,
유혹을 이겨본 자만이 진짜의 결백을 가질 수 있다고.
나는 고결하지 않다.
나는 끊임없이 괴로워하며, 매번 나를 지킨다.
그것이 나의 철학이다.
그것이 내가 나를 살아내는 방식이다.
나는 타락을 두려워하는 자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순수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