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맹 가리는 문학사에서 가장 다면적인 존재 중 하나다. 그는 이름을 바꾸고 목소리를 달리하며 수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그가 세상에 처음 내보인 얼굴, 바로 『유럽의 교육』 속의 로맹 가리가야말로 가장 진실하고도 강렬한 모습이었다. 이 작품은 흔히 그의 대표작으로 언급되는 『자기 앞의 생』이나 『새벽의 약속』보다 더 순도 높은 사유와 문학적 긴장을 담고 있으며, 철학적 깊이와 언어적 정제라는 측면에서 그의 정점이라 평가할 만하다.
『유럽의 교육』은 30대 초반 청년이 썼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숙성된 시각을 보여준다. 단지 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년의 성장담에 그치지 않고, 인간성과 문명, 윤리와 폭력이라는 보편적 문제를 날카롭게 파고든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첫 소설에서 보여주는 감정의 과잉이나 구성의 미숙함이 거의 드러나지 않으며, 오히려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형식으로 서사를 이끈다. 이는 로맹 가리의 내면에서 이미 ‘문학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에 대한 통찰이 성립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많은 이들이 그의 문학적 정점으로 꼽는 『자기 앞의 생』은 분명 감동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그 감동은 대중적인 감수성과 연결된 측면이 강하며,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의 효과가 오히려 작가적 정체성을 흐리게 만든 부분도 있다. 『새벽의 약속』 역시 회고적 자기 서사로서 매력적이지만, 그것은 지나치게 개인적인 신화에 가깝다. 그에 반해 『유럽의 교육』은 특정한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서, 하나의 문명 전체를 무대로 삼고 있다. 이 작품에서 가리는 유럽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허위의 문명을 비판하며, 동시에 그 안에 남아 있는 인간의 존엄과 연대 가능성을 찾고자 한다.
언어의 사용에서도 『유럽의 교육』은 인상적이다. 감정을 부풀리거나 농담으로 의미를 전복시키는 아자르의 문체와는 달리, 이 작품에서는 단어 하나하나가 무겁고 조밀하다. 전장의 침묵, 동료들의 죽음, 어린이의 눈에 비친 세계의 붕괴가 모두 절제된 언어로 묘사되며, 그만큼 독자에게 더욱 큰 여운을 남긴다. 감상적 울림이 아닌, 구조적 충격을 주는 문장들이다. 로맹 가리가 이후에 다양한 스타일로 실험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처럼 단단한 언어적 기반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유럽의 교육』은 그의 다른 작품들보다 상대적으로 덜 읽히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다시 이 책을 꺼내 읽어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우리는 다시금 문명의 균열을 목도하고 있고,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새로운 형태의 폭력에 둘러싸여 있다. 『유럽의 교육』은 우리가 그저 잘 살아가는 법이 아니라, 올바르게 살아가는 법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를 묻는 책이다. 유럽이라는 이름은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 가치의 이름이어야 한다는, 작고 단단한 외침이 이 책 안에 담겨 있다.
로맹 가리가 더 오래 살았다면, 그는 자신의 예언적 감각으로 또 다른 ‘문명 비판서’를 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그는 결코 『유럽의 교육』보다 더 정직하고 아름다운 글을 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은 작가의 시작이자, 어쩌면 가장 끝에 도달한 문학적 진실이었다. 문명의 뿌리를 다시 묻고자 하는 이들에게, 로맹 가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진짜 유럽은, 진짜 인간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