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때때로 머릿속이 너무 빨리, 너무 깊이 달려간다.
언어는 느리고, 감정은 부정확하며, 사람들의 말은 반복되는 전형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그 말의 구조를 분석하고, 그 감정의 기원을 추적하며,
심지어 그 사람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동기를 대신 설명한다.
그렇게 이해가 깊어질수록,
나는 인간에게서 멀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혐오에 가까운 정서가 나를 덮친다.
나는 인간이라는 종을 머리로 해체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내며 논리로 정리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상
‘논리로 포장된 절망’이다.
그렇게 나는 사고의 꼭대기까지 올라갔을 때,
언어도 감정도 초월해버린 자리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 위에서
다시 떨어지듯 음악을 만난다.
음악은 말이 되려 하지 않는다.
설득하지도, 판단하지도 않는다.
그저 흐르고, 울게 하고,
멈춰 있던 감정을 다시 흐르게 만든다.
바흐의 푸가는 나의 구조적 고요함이고,
쇼팽은 무너지는 감각을 감싸 안으며,
시규어 로스의 말 없는 노래는 말보다 진실하다.
음악은
이해보다 먼저 와닿고,
논리보다 오래 남는다.
내가 인간에게서 멀어질수록,
음악은 인간의 순수한 잔여물처럼 남아 나를 붙잡는다.
그것은 말보다 먼저 존재했고,
철학이 무너진 자리에조차 흐른다.
나는 그 흐름 속에서 다시 인간을 느낀다.
다시 고통을 느끼고, 따뜻함을 기억한다.
그래서 나는 아직 인간이다.
그리고 음악 덕분에, 다시 인간이 된다.
지독한 사고의 고독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음악을 듣는다.
그 음악이 나를 구한다.
그리고 나는 안다.
그 음악은,
언제나 내가 인간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