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는 왜 언론을 쇼핑하는가?

by 신성규

신문 기사를 읽을 때 나는 문장보다 먼저 ‘의도’를 읽는다. 어떤 기사를 왜 썼는가, 어떤 타이밍에 누구의 입장을 대변하는가, 무엇을 숨기고 있는가. 이 질문은 그 기사보다 더 많은 정보를 준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사를 정보로 읽고, 나는 기사를 권력의 압력으로 읽는다.


나는 종종 이런 구조를 본다. 지방 건설사가 지역 여론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유도하기 위해 언론사의 지분을 보유하거나, 사주와 유착 관계를 맺고, 그것을 지렛대로 삼아 정치권에 압박을 넣는다. 이 구조는 간단하지만 강력하다.


돈 – 여론 – 정치 – 인허가

이것이 언론이 산업의 하청이 되는 경로다.



언론은 이제 권력의 출구 전략이다


건설사에게 가장 큰 리스크는 법이 아니라 여론이다. 지역 사회의 반발, 환경단체의 견제, 정치적 의혹. 이 모든 걸 미리 제압하기 위한 무기가 바로 신문이다. 그래서 신문은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다. 논리를 구축해주는 방어선이 되고, 동시에 적대세력을 조롱하는 공격수가 된다. 은근한 비아냥, 반복된 프레이밍, 익명의 제보자 인용… 우리는 이미 그것들을 수없이 경험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그 언어에 너무 익숙해져, 그 왜곡조차 눈치채지 못하게 되었다.



왜 사람들은 ‘이 기사를 왜 썼는지’를 묻지 않는가?


그 이유는 단순하다. 기사를 ‘팩트’로 믿는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신문은 교과서처럼 읽히고, 뉴스는 마치 현실의 일부처럼 소비된다. 비판적으로 읽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언론의 문법을 해석할 눈이 없다.


그러나 나는 점점 더 확신하게 된다.

기사의 가장 중요한 정보는 그 기사가 왜 나왔는가에 있다.

때로는 기사보다 기사의 시점, 기사가 언급하지 않은 것, 표현 방식의 반복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예컨대, 어떤 건설사의 대규모 개발 기사가 지역 경제를 살릴 것처럼 쓰여 있으면, 나는 먼저 그 건설사가 어떤 이해관계를 가졌는지, 그 지역 의원은 어떤 인맥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그 기사에 왜 반대 목소리는 한 줄도 실리지 않았는지를 본다.



말은 진실이 아니라 전략이다


언론은 오늘날 정치와 자본의 이중대가 되어 있다. 특히 지역 기반의 언론일수록 이 구조는 더 노골적이고, 더 단단하게 엮여 있다. 여론을 조성하고, 논란을 덮고, 방향을 만들어내는 일은 더 이상 음모론이 아니라, 영업 전략이다. 건설사는 이러한 전략을 이미 잘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여전히 언론을 중립적인 정보 전달자로 여긴다.


그렇기에 조작은 성공한다.

사람들이 해석하지 않기 때문에.



결론: 정보를 읽는 것이 아니라 ‘의도’를 읽는 사람


나는 이제 신문을 정보로 읽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압력의 기호, 정치의 교차점, 이해관계의 지도로 읽는다. 사람들은 나를 예민하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들이 무딘 것이다.


생각하지 않는 자는 결국 조종된다.

읽지 않는 자는 결국 설계된 프레임 속에 산다.

그리고 그 프레임을 만든 자는 말을 만든 자들이다.


나는 그래서 말보다 ‘왜 이 말을 했는가’를 먼저 생각하는 습관을 잃지 않으려 한다.

그 질문만이 우리를 생각하는 존재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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