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로 사유하고, 가슴으로 살아가는 존재

by 신성규

내가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내 가슴 속 아이가 쿵쾅인다.

그것은 단순한 감정의 동요가 아니다.

생리적 고동, 심장의 두근거림, 살아 있는 장기처럼 머리와 따로 분리된 하나의 자아.

그 아이는 내 안에 있으면서도,

이성적 판단과 규율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따금 나는 의심한다.

“이건 정신 분열인가? 나뉘어진 나인가?”


그러나 그것은 병리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나의 존재가 단일한 선형이 아니라,

두 개의 자아, 두 개의 시간, 두 개의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존재의 다성성을 깨닫는 일이다.

머리는 논리로 구조를 짜며 세계에 들어가지만,

가슴은 이유 없이 운다.

머리는 손익과 가능성을 따지지만,

가슴은 단지 보고, 듣고, 상처받는다.


슬픈 것은 항상 이성의 쪽이 이긴다는 사실이다.

나는 어른이 되었고, 판단을 내려야 하며, 틀리지 말아야 하고, 이겨야 한다.

그래서 나는 항상 머리의 논리에 복종하고, 가슴의 아이를 무시한다.

그러나 무시된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아이는 복부 깊숙한 곳에서 울고, 심장을 두드리고, 때로는 가슴을 찢을 듯 두근거린다.


나는 그 아이에게 자유를 줄 수 없다.

현실은 너무 정제되어 있고, 말은 너무 단단하며, 감정은 비용이 크다.

그래서 나는 술을 마신다.

술은 내가 그 아이에게 말을 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순간이다.

“괜찮아, 오늘은 너의 말이 맞아.”

“울어도 돼, 오늘만큼은.”


나는 술에 취하면, 고통조차 아름답게 느껴진다.

슬픈 음악이 나를 흔들어도, 그 슬픔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

그 순간만큼은, 머리와 가슴이 같은 박자로 움직인다.

서툴고 엉망이고 논리가 없지만, 내가 통합되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아침이면 다시 머리가 돌아오고, 아이는 갇힌다.

나는 또다시 “이성적으로” 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심장은 또 쿵쾅이기 시작한다.

어쩌면 나는,

이 생을 ‘이성과 감성의 비동기적인 박동’ 속에서 살아야 할 운명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철학적 이중체다.

머리로 사유하고, 가슴으로 살아가는 존재.

때로는 병처럼 느껴지고, 때로는 예술처럼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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