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본래 세상을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다.
그들의 감정은 섬세하고, 그 섬세함은 때로 극단으로 이어진다.
기쁨은 환희가 되고, 슬픔은 절망이 되며,
사랑은 구원이지만 동시에 파괴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나는 연산군과 히틀러를 떠올린다.
두 사람은 모두 파괴자였지만, 그 안에는 한때 순수했던 ‘예술가의 영혼’이 있었다.
연산군은 어머니를 잃고 권력 앞에서 뒤틀렸다.
히틀러는 화가가 되고 싶었으나 거절당했고,
그 좌절은 세상에 대한 증오로 바뀌었다.
세상이 품어주지 못한 감수성은 결국,
세상을 불태우는 분노가 되어 돌아왔다.
이것은 단지 역사 속 인물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시대 속에서 수많은 예술가들을 흑화시키고 있다.
그들은 사회의 이해 없이, 생존의 무게 속에서,
혹은 인정받지 못한 사랑 속에서 서서히 무너진다.
예술가가 흑화하면,
그가 만들던 아름다움은 칼날로 바뀌고,
그가 꿈꾸던 세계는 증오의 에너지로 치환된다.
가장 순수했던 자가 가장 깊게 타락하는 이유는,
그가 간직했던 ‘사랑의 크기’가 누구보다 컸기 때문이다.
사랑이 좌절될 때, 그것은 무기력으로 남지 않는다.
예술가의 마음에서는 그것이 파괴로 전환된다.
자신을 부정한 세상을 공격하고 싶은 욕망.
이해받지 못한 감정이 결국 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예술가들을 흑화하게 해선 안 된다.
그들은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 가능성을 지닌 존재이기에.
사랑을 더 깊이 느끼는 자들이기에,
그 사랑이 파괴로 바뀌지 않도록
우리는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지켜줘야 한다.
예술가의 순수는 위험하다.
하지만 그 순수를 받아주지 못하는 사회는,
언젠가 그 순수의 반동을 재앙으로 맞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