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사랑을 가장 선하고 숭고한 감정이라 말한다.
사랑은 인간을 고양시키며, 타인을 위해 자신을 내어줄 수 있게 만든다고 믿는다.
그러나 나는 묻는다.
사랑은 정말 ‘선한 감정’인가?
왜 가장 순수했던 사랑이, 가장 잔혹한 감정으로 뒤틀어지는가?
나는 믿는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심연의 힘이다.
그 힘은 타자를 품으려는 동시에, 타자를 소유하고 해체하고자 하는 내적 충동을 함께 품는다.
그것은 곧 자기 해체와 타자 융합의 이중적 욕망이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우리는 이기심을 내려놓은 듯 보인다.
하지만 실상, 그 순간 우리는 상대를 통해 자기 자신을 확장하고자 하는 무의식적 열망에 사로잡힌다.
사랑은 “너를 위한다”는 선언이 아니라,
“너를 통해 나를 완성하고 싶다”는 존재론적 요구다.
그 요구는 언제나 불완전하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상대를 원하고, 붙잡고, 때로는 파괴하고 싶어진다.
이때 사랑은 더 이상 선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타자를 향해 흐르지만, 결국 자기 해체와 동일화의 갈망으로 불타는 에너지다.
우리는 악을 감정이 없는 자의 소행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악은 오히려 감정이 깊은 자에게서 비롯된다.
그들은 사랑에 깊이 빠졌고, 그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에 절망한 이들이다.
기독교의 사탄도 그랬다.
그는 신을 사랑했고, 그 사랑을 박탈당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는 타락했다.
그의 죄는 신을 증오한 것이 아니라, 신의 사랑을 원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사랑은 거절당했다.
사랑이 실패할 때, 그것은 냉소와 파괴, 질투와 복수로 전이된다.
악은 사랑의 반대가 아니라, 사랑의 실패이자 잉여다.
도스토옙스키는 "악령"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신을 향한 사랑과 동시에, 신을 부정하고 싶은 충동을 통합적으로 그려냈다.
이 사상가는 말한다.
“인간의 선과 악은 하나의 에너지로 연결돼 있다.”
사랑은 나를 초월하려는 욕망이자,
동시에 타인을 통해 나를 해체하고자 하는 충동이다.
그 에너지가 균형을 잃으면, 사랑은 악으로, 구원은 파괴로 변질된다.
사랑은 인간을 구원할 수도, 파괴할 수도 있다.
그것은 감정이 아니라 힘이며,
그 힘은 방향에 따라 창조가 되기도, 파괴가 되기도 한다.
세상은 순수한 사랑만을 말한다.
그러나 정직한 사랑은 절망의 문턱까지도 함께 품는다.
심지어 상대를 파괴하고 싶은 충동조차도, 그것이 사랑의 다른 얼굴임을 인정해야 한다.
사랑은 때로 이기적이고, 무섭고, 잔인하다.
그림자를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그것에 삼켜진다.
도스토옙스키가 통찰한 대로,
사랑과 파괴는 하나의 심연에서 파생된 동일한 기질의 힘이다.
우리는 그 힘을 어떻게 다룰지를 배워야 한다.
그것이 철학이며,
그것이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