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젝의 이데올로기

by 신성규

“진짜 이데올로기란, 당신이 그것을 비웃을 때조차도 이미 당신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은 현대 철학계에서 가장 독특한 목소리를 내는 인물이다. 그는 라캉의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주의, 헤겔 철학을 결합해 오늘날 사회의 심층 구조를 파헤친다. 그가 가장 집요하게 묻는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정말로 우리의 생각을 스스로 하고 있는가?

아니면 생각조차도 이데올로기가 대신하고 있는가?


그의 대표작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어떤 신념을 비웃을 수 있다 해서, 그것에서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예컨대, 우리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소비생활을 한다.

우리는 정치인의 말을 믿지 않는다면서도 투표한다.

우리는 광고를 조롱하면서도 브랜드를 사고,

기업을 욕하면서도 주식을 산다.


지젝은 이 모든 행위를 “이데올로기의 유희적 복종”이라 부른다.

우리는 안다. 그러나 그럼에도 행한다.

그 사이에서 이데올로기는 더욱 강력해진다.


지젝이 주목한 것은 환상(fantasy)이다.

우리는 이데올로기를 직접 믿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욕망은 이데올로기를 따라 구성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민주주의가 완벽하다고 믿지 않지만,

‘최소한 독재보단 낫다’는 환상 속에서 안도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지 않다는 걸 알지만,

‘기회는 열려 있다’는 믿음 속에서 체계를 받아들인다.


지젝은 이것을 “나 아닌 누군가가 믿고 있으므로, 나는 행동한다”는 구조라고 본다.

믿음은 개인의 의식에 있지 않다.

사회 시스템의 ‘행위’로 내재되어 있다.


지젝의 라캉주의는 욕망이 나로부터 시작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타자가 나에게 원하는 것을 원하길 바라는 것’이다.


종종

우리는 내가 정말 원하는 직업이 뭔지보다,

‘남들이 부러워할 삶’을 좇는다.

우리는 브랜드의 진짜 가치를 모르면서도,

‘그 브랜드를 욕망하는 사회’를 욕망한다.


지젝은 현대 소비사회에서

이 욕망은 끊임없이 상품화된 ‘쾌락’을 약속한다.

그러나 그 쾌락은 항상 결핍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구매하고, 조롱하고, 반복한다.

결국 지젝은 말한다:


“오늘날 억압은,

더는 ‘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즐겨라!’고 강요한다.”


지젝은 단순한 비판자가 아니다.

그는 “진짜 저항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체제를 조롱하는 것? 이미 이데올로기의 일부다.

순응하지 않는 척? 이미 예정된 반항이다.

대안적 소비? 새로운 시장일 뿐이다.


그는 진정한 전복은 현실을 ‘다르게 상상하는 능력’에 있다고 말한다.


“정치적 해방은,

현실을 넘어선 가능성을

‘불편함을 감수하고 상상할 수 있을 때’ 시작된다.”


여기서 지젝은 진정한 자유는

자신의 욕망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성찰하고,

그로부터 잠깐이나마 거리를 두는 철학적 용기에 있다고 본다.


이제 질문은 명확하다.

당신이 지금 생각하는 이 말들,

당신이 내린 이 결정들,

당신이 원하는 그것들,


그것들은 정말 당신의 것인가?

아니면, 이미 오래전에

이데올로기가 짜놓은 무대에서

당신의 몫의 대사를 말하고 있는 것일 뿐인가?


지젝은 우리에게 말한다: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라.

그러나 그보다 먼저,

당신 속의 이데올로기를 웃지 말고 직시하라.

왜냐하면 그건 이미

당신의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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