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때때로 보수를 바라보며 답답함을 느낀다.
그들은 현재에 반응할 줄은 알지만, 미래를 상상하지는 못한다.
그들의 언어는 늘 과거에서 출발하고, 현실에만 머무르며,
정작 다가오는 세기적 변화에 대한 전망은 없다.
보수는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새로운 제도, 새로운 사회모델, 기술 변화에 대한 방향성…
어느 것도 스스로 먼저 제시하지 않는다.
그들은 진보의 안을 비판은 하지만, 설계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정치를 소극적 행위로 만든다.
“반대하는 자”는 되지만, “길을 여는 자”는 되지 못한다.
우리는 지금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기술이 인간 삶을 바꾸는 시대를 살고 있다.
AI, 자동화, 기후변화, 인구구조 변화는 정치가 해석하고 방향을 제시해야 할 핵심 영역이다.
그런데 보수 정치인은 이 주제에 대해 말을 하지 않는다.
AI와 인간 노동의 관계, 교육과 복지의 재설계,
민주주의와 알고리즘 권력의 충돌…
보수는 이 거대한 변화 앞에서 침묵한다.
그들이 여전히 말하는 것은 ‘시장’, ‘안보’, ‘법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AI 시대의 인간 조건을 설명할 수 없다.
정치는 기술보다 먼저 미래를 상상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보수는 기술보다도 느리고, 감각보다도 둔하다.
상상은 위험하다.
새로운 것을 말하면 비판을 받기 쉽다.
보수는 오래도록 안전한 언어만을 말해왔다.
그래서 상상력의 퇴화를 감수하며 권력을 유지해온 것이다.
그러나 상상하지 않는 정치는
결국 이탈당하고 마는 정치다.
미래 세대와 공감하지 못하는 보수는 점점 더
“자기 세대만의 보수”로 고립되고 있다.
지금 보수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단순한 ‘전통’도 아니고, ‘보호’도 아니며,
오히려 미래에 대한 철학적 상상력이다.
이 상상력은
과거를 보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미래로 이끌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다.
상상력 없는 정치는 당장은 욕을 덜 먹을 수 있지만,
결코 미래로 가지 못한다.
보수는 이제 반응이 아니라 설계하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AI 시대, 자동화 사회, 감정경제, 인류의 존재론적 전환 앞에서
‘전통’만 말하는 정치인은 결국 낡은 지도다.
나는 보수가 미래를 말하기를 원한다.
비판을 넘어 설계로,
불안을 넘어 비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