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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누 Jul 15. 2020

19살에 300만 원 들고 캐나다로 왔다 #4

그리고 이민에 성공했다



#4 새로운 집


눈보라를 뚫고 홈스테이 집에 도착했다. 아주 환한 미소로 반겨주는 필리핀 아줌마, 개비를 보니 온몸에 눈이 녹는 듯했다. 적어도 그때는 그랬다.


다행히 내가 머물 집은 눈보라가 지난 후여서 전기가 복구된 상태였다. 추운 곳에 벌벌 떠는 아내가 생각나 마음 아플 정도로 따뜻한 나의 첫 캐나다 집은, 내가 오는 시간에 맞춰 저녁도 준비돼 있었다. 홈스테이 경험이 많은 개비는 한국 학생들을 맞이하며 배운 각종 한국음식도 할 줄 알았다. 닭볶음탕으로 기억되는 그 저녁은 한동안 캐나다에서 먹은 한국음식 중에 가장 맛있었다. 




저녁을 먹고 집 구경을 했다. 1층짜리 단독주택 지하까지 3~4개 정도 되는 방이 있었고, 하숙객은 옆방 일본인을 포함해 총 2명이었다. 아 참, 여기서는 개비를 "맘", 즉 엄마라고 부른다고 한다. 아니 생전 처음 보는 아줌마인데 내가 왜 엄마라 불러야 하는지 이해가 안됐지만 하우스 룰이라 어쩔 수 없었다. 최대한 안 부르는 게 방법이었다. 1 아웃.


시차 때문일까, 새벽 3시쯤 일어난 거로 기억한다. 멀뚱멀뚱 캄캄한 방 안에 있다 보니 심심해졌다. 미쳐 정리 못해 쌓여있던 짐 사이에 노트북을 꺼내 한국 예능이나 보며 아침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전날 미리 받았던 와이파이를 연결하려 해 보지만 아무리 뒤져봐도 와이파이 이름을 찾을 수가 없다. 그렇다, 이 집은 새벽에는 모뎀을 꺼놓는 것이었다. 13시간의 시차를 적응해야 됐던 나는 오랫동안 새벽마다 공허한 시간을 보냈다. 2 아웃.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보니 배고파졌다. 전날 저녁을 맛있게 먹어서 그랬을까, 아침에는 또 뭘 먹을까 잔뜩 부푼 마음에 방문을 나섰다. 식탁 위엔 도매 마트에서 사 온듯한 식빵과 잼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캐나다 이틀째, 처음 보는 브랜드였지만 싸구려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아 이게 서양식 아침이구나!" 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는 법. 오늘의 메뉴는 캐나다식 아침이니 불평불만 없이 먹었다. 그래도 태국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각종 향신료가 들어간 이국적인 태국 아침을 먹었던 태국 첫 날에 비하면, 우리에게 친숙한 식빵과 잼은 아주 양호했다. 문제는, 그 식빵과 잼을 매일 먹어야 된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이튿날, 1주일, 2주일이 흘러도 아침은 항상 싸구려 식빵과 잼이었다. 왜 옆방에 사는 일본인이 아침에 주방에서 볼 수 없는지 알 수 있었다. 엄마가 해준 뜨뜻한 밥과 국이 그리워졌다. 3 아웃이었다. 




캐나다에 온 지 한 달도 안되어 홈스테이를 나오기로 결심했다. 3 아웃이 끝이 아니었다. 남들과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나는 나름 변화에 익숙하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나날이 부실해져 가는 저녁과 사생활 침해가 심했고, 매달 800불은 그 모든 걸 감내하기에 좋은 가격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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