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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누 Jul 19. 2020

19살에 300만 원 들고 캐나다로 왔다 #5

그리고 이민에 성공했다 #5




#5 코리아타운


아직은 홈스테이에서 나오기 전의 일이다. 아내, 당시 여자 친구는 인도인 홈스테이에서 인도음식에, 그리고 필리핀 홈스테이에서 필리핀 음식에 질려버린 그동안 일부러 멀리하고 있었던 한국음식을 먹으러 갔다. 캐나다에 완벽 적응하려 큰 결심을 했던 우리는 한국음식은 물론 한인사회와도 거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에 우리에겐 나름 큰 일탈 이기도 했다.


사실 캐나다의 제일 큰 대도시 토론토에서 한국음식을 먹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코리아타운이 아니더라도 번화가마다 한국음식점이 몇 군데나 있으니 지나가다 침 흘리며 지나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문을 열고 식당에 들어갔다. 지구 반대편에서 맡는 고향냄새는 최고였다. 한인 웨이트리스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았다. 메뉴판으로 우리의 아이쇼핑을 시작했다. 불고기, 김치찌개, 된장찌개, 감자탕, 짜장면 등 없는 게 없었다. 대체로 15불 안팎이던 가격은 한국 물가로써는 납득이 안 되는 가격이었지만, 사실 캐나다 물가를 고려하면 고급 외식음식은 아니었다. 나는 돈가스를, 아내는 순두부찌개를 시켰다.


한입을 베어 물고 깨달았다. 지금까지 우리가 멀리하던 한국음식 문화는 우리의 결심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이상한 오기였다는 걸. 인터넷에서나 보던 영어를 잘하기 위해선 교민과 절대 어울리면 안 되며 그들의 문화를 배워야 된다 라는 영상과 글들은 는 수많은 성공사례 중 하나였을 뿐이고 나는 그걸 받아들이는 거보다 나의 스타일로 바꿔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게 돈가스 한입에 지나간 생각이다.



돈까스가 끝내주던 밥보


홈스테이에서 나왔다. 새로운 집을 찾던 나는 나의 전반적인 캐나다 삶이 만족스러워야 학업의 성취도가 올라갈 거라고 생각했다. 요즘 흔히 말하는 "워라밸, 워크-라이프-밸런스"에 최적인 장소를 물색하던 차에 캐나다 왕초보인 나는 갑작스러운 변화보다는 천천히 변화되는 환경 아래서 학업에 집중하는 게 더 옳다고 생각했고 코리아타운으로 이사가 기를 결심한다.


토론토에는 코리아타운이 2개가 있다. 60~70년대 캐나다 이민 1세대 한인 분들이 이뤄놓은 크리스티 지역, 그리고 약 10년 전부터 부상하던 핀치 지역. 크리스티 지역은 번화가에 가까웠기에 핀치 지역으로 월세 45만 원 정도 짜리 반지하방에 이사를 했다. 홈스테이에서는 75만 원 정도 냈으니 식비가 매달 식비가 30만 원 정도 남는 셈이었다. 이제 그 30만 원을 얼마나 아낄지는 내 몫이었다.




300만 원을 들고 왔고, 첫 달 홈스테이비 75만 원, 두 번째 달 월세 45만 원, 핸드폰비, 교통비, 등을 사용하고 나니 슬슬 통장잔고에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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