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누 Jul 26. 2020

19살에 300만 원 들고 캐나다로 왔다 #7

그리고 이민에 성공했다




#7 열정페이? 꿀알바?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 시점에 나에게 남은 돈은 100만 원 미만으로 기억한다. 다행히 자취방으로 옮긴 이후론 모든 끼니를 집에서 해결, 혹은 도시락을 싸서 다녔기 때문에 많은 돈을 아낄 수 있었다.


당시에 시급 7불을 받고 일했다. 그 당시 최저시급이 10.25불 정도 했었는데 최저시급도 못 받으면서 일했었던 것이다. 그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려 생각조차 안 했던 이유는, 다른 모든 한인 가게가 그랬었기 때문이다. 지금 캐나다, 그리고 캐나다 한인사회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당시에는 그랬다. 




그래도 처음 찾은 아르바이트에서 대학생활을 마치고, 취업할 때까지 일했던 이유가 있었다.


1. 캐나다는 팁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에 가게 매출의 10% 정도는 팁으로 받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시급보다 팁이 항상 월등히 많았다. 술집 특성상 평일은 장사가 잘 안 되는 편이었지만, 주말에는 팁으로만 100불 이상을 받았으니 생활비와 학비 일부는 충당할 수 있었다. 자그마한 가게였기에 홀서빙 직원은 나 혼자밖에 없었고, 그래서 모든 팁은 혼자 독차지할 수 있었다 (사실 주방에 팁 30%는 줘야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도 가게마다 논란이 있다).


2. 평일에 장사가 안됬었기에 오래 일할수 있었다. 

매일매일이 장사가 잘돼서 가게가 바쁘다면 돈은 많이 벌 수 있었겠지만, 본업인 학업에 신경을 못썼을 것이다. 나의 어려운 형편을 대략 알고 있었던 사장님과 사모님은 친절하게도 가게에 손님이 없을 때는 노트북으로 과제와 공부 등을 할 수 있게 허락해주셨고 덕분에 평일에는 상당량의 과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3.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학교가 4시에 끝나 5시까지 가게에 도착하면 6시에 사장님 사모님과 가게 오픈전에 저녁을 먹었다. 이 뜻은 출근날에는 저녁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어떤 때에는 점심 도시락 값이 아까워 6시까지 굶었다가 가게에서 끼니를 해결한 적도 있었다. 알바시간은 오후 5시부터 새벽 3시 반까지 였는데, 대략 11시쯤에 저녁을 한번 더 주셨으니 정말 식사 제공면에서는 "꿀알바"가 아닐 수가 없었다. 게다가 한정된 요리실력에 매일 볶음밥만 먹던 때에 가게에서 다양한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돈 괜찮게 벌고, 일하는 환경 좋고, 복지(?)도 좋으니 상당히 만족하며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지만 물론 타지에서 돈을 번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고, 어느 일이 그러하듯 힘든 적도 많았다. 우리 엄마가 말하기를, 남의 지갑에서 돈 꺼내는 거란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일단 학업과 아르바이트, 더군다나 술집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것은 체력적으로 정말 힘들었다. 앞서 짧게 언급했다시피, 학교는 대략 4시에 끝났다. 오전 수업을 듣기 위해선 아침 7시엔 집을 나서야 학교에 시간 맞춰 도착할 수 있었는데,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씻고 잘 때쯤엔 이미 5시가 훌쩍 넘긴 적이 다반사였다. 잠이 들면 못 일어날 거란 생각에 하루를 꼬박 밤새고 오전 수업을 간 후, 다시 알바로 간 적도 있었다. 여기에 틈틈이 조별과제, 장학금을 위한 봉사활동, 교외활동도 해야 했었다. 더군다나 나에겐 방학도 없었다. 졸업을 빨리 하기 위해 방학 대신 여름학기 수강을 선택했고, 2년 과정을 1년 2개월 안에 끝냈어야 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는 미친 듯이 살았던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직장인을 위한 비즈니스 영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