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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누 Aug 14. 2020

19살에 300만 원 들고 캐나다로 왔다 #11

그리고 이민에 성공했다




#11 학교생활 3



큰 강의실을 둘러봐도 남자는 나를 포함해 한두 명뿐, 더군다나 조별과제가 많은 과의 특성상 여학우들과 교류가 많았다. 더군다나 당시만 해도 영어가 정말 편하지 않던 실력이었고 과 특성상 조별과제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점점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말 한마디 하더라도 "What?" 이라며 상대방이 이해를 잘 못할 때마다 위축되는 내 모습이 보였다. 솔직히 한국이나 태국에서처럼 마음이 맞는 동성친구가 있었더라면 내 영어가 틀리건 말건 이해하는 건 너의 몫이다 라는 마인드로 신나게 의사소통할 수 있었겠지만, 어린 나이에 지구 반대편에 넘어와 그런 친구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이렇게 많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위축되는 일이 쌓일 때마다 나의 성격은 변해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 상당히 활발했다. 교내 거의 모든 행사에 참석했고 MC로써 진행도 하고, 연설도 해보고, 매주 전교생 앞에서 기타 치며 몇 년을 보냈다. 선생님들은 나의 이런 밝고 리더십 있는 모습을 큰 장점으로 봐주었고, 친구들도 이런 나의 모습에 매력을 느끼는 듯하였다. 그렇게 친구들의 중심에서 4~5년가량 보낸 후 맞이하는 이 새로운 환경,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나의 모습은 나 스스로가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다. 다행히 당시엔 여자 친구이던 아내가 있어서 학교 밖에서의 생활은 외롭지 않았으나, 학교에서 눈 씻고 찾아봐도 도저히 친구라고 부를만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친구가 없는 건 괜찮았다. 처음 태국에 가서 태국 학교를 다니며 적응을 하던 시기에도 친구는 없었고, 이방인으로써의 심한 왕따와 괴롭힘도 당해봐서 그런가 보다. 하지만 나를 점점 더 힘들게 했던 건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작아지고 위축되어가는걸 나 스스로 느껴간다는 거였다. 뛰어나진 않았어도 친구들에 비해 부족하지도 않았던 영어도 한마디 한마디 하기 전에 속으로 생각하게 되고, 문법이 틀리진 않을까, 이렇게 말하는 게 여기 문화에 맞는 걸까, 수많은 생각을 하고 나서야 한마디 뱉을 수 있었고 그마저도 틀리진 않았을까, 날 비웃진 않았을까 생각하는 지경까지 가게 되었다. 




그렇게 첫 학기를 혼자 보냈다. 2주의 아주 짧은 방학을 보내면서  결심했다. 이런 나의 모습이 계속된다면 친구도, 성적도, 취직도, 이민도 무엇하나 안될 거라고 속으로 되뇌고 되뇌었다. 개학 후 호기롭게 학교를 갔던 첫날, 그리고 둘째 날, 그다음 날, 이미 나는 많이 변해있었고 변해버린 내 모습은 내 결심보다 조금 더 컸나 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혼자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건 조별과제다. 알아서 팀을 짜기엔 친구가 없었고, 교수님이 팀을 짜주면 팀원들이 날 반가워하지 않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날은 스스로 조별과제 팀을 짜는 거였는데, 역시나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않은 학생들만 남았다. 우리 팀은 한 명이 부족했고 그때 지각을 자주 하는 마이크가 강의실을 들어오고, 우리 조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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