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을까
첫째 아이가 묻는다.
"엄마, 막내가 나중에 크면 어떻게 얼굴이 바뀔지 궁금해!"
워낙 막냇동생을 귀여워하는 첫째 아이는 때때로 동생을 엄마 마음으로 보기도 한다. 막내가 컸을 때 어떨지 궁금하다니. 그 질문을 하는 첫째 아이의 마음이 사랑스럽다.
"너도 그런데, 엄마는 어떻겠니? 엄마도 너희 셋 모두 나중에 어떻게 바뀔지 너무 궁금해!
어떤 모습으로 클지 정말 궁금해. 그런데 엄마가 어떻게 늙을지는 안 궁금해. 안 늙고 싶어."
아이를 사랑스럽게 생각했던 마음으로 시작했던 대화인데, 늙음에 대한 푸념으로 이어졌다. 늙는다는 건 자연스러운 건데도 왠지 계속 청춘일 것만 같다. 신랑과 대학 때 만나 이십 년이 넘게 만났다는 걸 헤아려 볼 때마다 그 세월이 믿기지 않는다. 나는 그 이십 년 동안 얼마나 많이 변했을까. 얼마나 많이 늙었을까.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라면 나이 마흔은 너무 젊다고 다시 돌아가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내가 사십 대라는 것이 아직도 낯선, 전보다 체력 회복이 늦은, 그야말로 중년인 것이다. 중년이라니.
사전에서 중년을 찾아보았다. '청년과 중년의 중간'이라는 말까지는 이해하겠다. '한참 젊은 시기가 지난'이라는 표현은 인정을 못 하겠다. 아니, 한창 젊은 건 아니긴 하지. 그래도 백세시대에 나이 마흔부터 젊지 않다면 어쩌라는 것인가. 중년은 때로 50대까지 포함한단다. 아, 정말 나는 빼도 박도 못하는 중년이구나. 오십 대에도 중년이라고 불러주면 고마운 거였구나. 내 나이는 언제쯤 적응이 될까. 아이들 나이는 정확하게 아는데, 내 나이는 아직도 헷갈린다. 아이들이 가끔 물어보면 대충 마흔 조금 넘었다고 둘러댄다. 사실 아이들 나이는 예전 우리나라 나이 기준을 따라 첫째는 초등학교 3학년 열 살, 둘째는 초등학교 1학년 여덟 살, 막내는 유치원 1년 차 다섯 살이라고 한다. 근데 내 나이는 만 나이로 말한다. 전 대통령이 이제 우리나라도 만 나이로 통일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엄마는 늙어도 예쁠 거야!"
이건 아이의 대답이 아니고 내가 아이에게 한 말이다. 늙기 싫다고 투정 부릴 때는 언제고, 갑자기 자기는 늙어도 이쁠 거라니 무슨 말인가.
"어떻게 예쁘냐고? 얼굴이 이쁜 게 중요한 게 아니고, 표정이 밝고 웃는 얼굴에 자신감 있는 사람은 예뻐 보이는 거야. 엄마 봐봐! 자, 이 얼굴이 예뻐? 이 얼굴이 예뻐? 맞지?!"
늙음과 진정한 아름다움에 관해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가 아주 활짝 웃었다가 난리다. 엄마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알아 들었을까? 아이는 엄마의 표정에 배꼽을 잡고 웃는다. 그렇게 웃으면서 크렴. 그렇게 밝게 웃으며 늙어보자.
가끔 엄마 얼굴을 가만히 뜯어보면 세월이 느껴진다. 아이들 어렸을 적 사진을 뒤적이다가 신생아인 우리 아이들을 안고 환하게 웃는 엄마를 보면 마음이 이상하다. 불과 몇 년 전인데도 참 젊은 우리 엄마. 사실 엄마를 뵐 때마다 얼굴을 자세히 보지는 않는다. 아이들과 같이 가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엄마의 눈을 마주치고 가만 들여다볼 시간도 여유도 없다. 그래서 가끔 유난히 엄마가 피곤한 날에는 엄마 얼굴에 비친―내 얼굴에도 비쳐있을―세월의 흔적 앞에 괜히 가슴 한편이 시리다. 그래도 우리 엄마는 예쁘다! 내가 아이에게 당당하게 늙어도 이쁠 수 있다고 말한 건 우리 엄마 덕분이다. 항상 사랑이 넘치고 아이들과 같이 웃고 자기 삶을 열심히 살며 주변을 돌아보고 돕는 모습. 그 모습은 젊을 때의 엄마만큼 여전히 빛이 나고 아름답다.
그런 아름다운 얼굴을 최근에 또 만난 적이 있다. 책 쓰기 강의에서 만났던 수강생분들. 처음부터 끝까지 반짝반짝하던 눈. 화장을 하지 않고 단정하고 수수한 옷을 입었어도 아름다웠던 모습.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감사함으로 배우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모습. 나이는 50대, 60대가 되었어도, 사전에서 정의하는 중년, 노년의 삶을 살고 있어도, 봄처럼 아름다웠다. 젊음의 그것보다 더 은은하고 따뜻한 빛이 났다.
잘 늙는다는 건 뭘까? 어쩌면 잘 늙는다는 건 오늘을 잘 살아가는 방법을 말하는 걸지도 모른다. 누구든 갑자기 늙지 않으니까. 그저 오늘을 묵묵히 내 삶을 사랑하며 감사함으로 살아간다면 멋진 할머니가 되지 않을까? 최근에 젊은이들이 '나는 ○○한 할머니가 되고 싶어!'라며, 자기 삶의 목표처럼 이야기하는 걸 종종 봤다.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행복한 할머니가 되고 싶어!'
'건강하게 책 읽어주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취미가 많은 할머니가 되고 싶어!'
'모든 걸 사랑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매일매일 공부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말에는 생각보다 많은 걸 담고 있다. 할머니가 되려면 일단 나이 들 때까지 살아있어야(?) 한다. 나이 들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 보고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을까?
가만히 생각해 본다.
우리 세 자매는 결혼하면 엄마·아빠랑 같이 살지 못한다니 결혼을 안 한단다. 과연 그럴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폭 빠져서 알콩달콩 살아야지. 아이들이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는다면 내가 꼭 도와줘야지 생각한다. 내 딸들이 맘 편히 자신들의 꿈을 펼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혼자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보니, 얼마 전 서평단으로 활동했던 토마쓰리 작가님의 『여름을 부탁해!』그림책이 생각난다.
서른세 마리(엄청나다) 고양이들이 여름방학을 맞아 할머니 댁에 놀러 온다고 하니, 밤늦도록 갖가지 음식을 열심히 준비하셨던 할머니. 막상 아이들이 왔을 때는 고단함에 꾸벅꾸벅 졸던. 아마도 내가 그런 할머니가 되지 않을까? 아이 셋의 아이들에 둘러싸여 '복작복작 우당탕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그림책 같은 인생이 될까? 적고 보니 딱 우리 엄마다. 손주 다섯에 힘들어도 주고 또 주는 할머니. 그러면서도 '비타민'이라며 손주를 꼭 안고 감사하는 할머니. 그렇게만 되어도 참 좋은 인생이겠구나 싶다. 우리 엄마 인생, 힘들지만 참 행복한 인생이구나.
아이가 자라고, 엄마는 늙는다.
아이가 자라는 것이 당연하듯, 내가 늙는다는 것도 당연하다.
이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오늘도 잘 살아야겠다.
잘 늙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