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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아이를 또 낳을까

하지만 바보라도 아픈 건 아프고 힘든 건 힘들다

by 장서나

"잘 다녀와~~~! 사랑해~~~~!!"

오늘따라 아침 인사가 더 유난스럽다. 평소보다 더 상기된 표정으로, 손은 더 신나게 흔들면서 머리 위에 큰 하트를 만들었다가 가슴 앞에 작은 하트를 만들었다가.... 아주 난리다. 그도 그럴 것이, 여름방학을 마치고 등원하는 첫날이었다. 아침마다 유치원 버스 앞에서 함께 손을 흔드는 동지들도 오랜만이었다.

"방학 잘 보내셨어요? 이제 얼마나 남았어요? 커피 한잔하실래요?"

아이 친구 엄마의 배가 못 본 사이 더 나왔다. 이러다가 갑자기 안 보이실까 싶어 말을 건넸다.


"2주 뒤에 날짜 잡았어요."

역시나! 3월에 처음 만났을 때는 한참 남은 것 같았는데, 벌써 둘째 아이가 나올 때가 되었다니. 첫째는 처음이라 '몰라서' 두렵고 떨리지만, 둘째는 이제 '알아서' 무섭고 긴장된다.



출산 出産

아이를 낳음.


'출산'의 사전적 정의는 참으로 짧다. 단순하다. 그런데 실제 출산은 어떠한가. 사람마다 다 다르다. 심지어 같은 사람이어도 낳을 때마다 다 다르다. 몇 번을 얘기해도 늘 생생하게 생각나서 질리지를 않는다. 출산의 방법이 어떠하든,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수많은 위험 요소가 존재한다.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전혀 예상 못 한 일도 일어난다. 이 모든 것을 알아도 낳는다. 한번 겪고 나서도 또다시 (혹은 몇 번이나 더) 그 두렵고 힘든 일을 한다.





이렇게 출산을 앞둔 이를 만나게 되면, 마치 내 일처럼 가슴이 설렌다. 기대가 되면서도 무섭기도 한 그 감정이 떠오른다. 임신하면 배가 나오고 몸이 힘들어지는 건 예상했지만, 겨드랑이가 불룩해지고 까매지고, 배꼽 아래로 털이 난 선이 생기는 건 몰랐다. 외모의 변화는 넘어간다 치고, 출산 후에 가슴이 그렇게 아프고 돌덩이가 될 수 있는 건지 몰랐다. 그리고 그 돌덩이를 없애는 데 출산의 고통만큼 아플지는 전혀 상상도 못 했다. 아기는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가. 임신과 출산은 이런 아기를 만나게 되는 숭고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엄마의 고통과 불편은 엄마끼리만 안다. 엄마끼리는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이야기해도 그것이 투정이나 불평이 되지 않는다. 하잘것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일을 사소하지 않다고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어쩌면, 인생에서 거의 없을―목숨을 건 용감한 일에 대한 무용담을 늘어놓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간혹 이런 얘기를 한다.

"미리 알았다면 덜 고생하지 않았을까?"

― 왜 이런 건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냐고. 난 이런 걸 전혀 몰랐다고. 아이를 가지고 낳고 기르는 과정에서 이렇게 스펙타클한 일들이 벌어질 거라는 걸 상상도 못했다고. 하나도 모르겠는데, 결정해야 하고 대처해야 하는 것이 괴롭다고.

"미리 제대로 다 배워서 알았으면, 아이 낳지 않았을걸?!"



러셀 로버츠는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에서 "겉으로 보면 자녀가 있는 부부들은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바보들이다."라고 말한다. 부모가 되는 것의 좋은 점이 대체 뭐냐며, 자녀가 부모에게 요구하는 희생에 비하면 그에 대한 보상은 보잘것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대체 좋은 점이 뭐란 말인가? 못생긴 그림을 마치 대단한 잠재력의 신호인 것처럼 냉장고에 붙여 놔야 하는 것? 찬 바람이 쌩쌩 부는 곳에서 점수도 나지 않는 축구 경기를 몇 시간씩 지켜보는 것? 경기 내내 다른 부모들이 뭉쳐 있지 말라고 고함지르는 소리를 듣는 것? 키가 작고 글을 못 읽는 2세에게 잠들기 전에 동화책을 읽어 주는 것? 미니밴을 살 핑계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픽픽 난다. 어쩌면 인류는 이런 '바보들' 덕분에 이어져 왔는지도 모르겠다. 더하기, 빼기를 아무리 해봐도 손해인 선택을 하는 부모들이 있어서.


하지만 아무리 바보라도 아픈 건 아픈 거고, 힘든 건 힘든 거다.

하루나 레몬의 만화 에세이 『그렇게 엄마가 된다』의 들어가는 말은 이렇게 시작된다.

"출산은 괴로웠습니다.

아마 이런 말은 하면 안 되겠죠?"

엄마의 희생은 당연하다고, 우리는 그 고통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엄마의 희생과 고통 덕분에 세상에 태어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해서 그게 당연한 건 아니다. 왜 우리는 괴로운 걸 괴롭다고 하지 못할까? 엄마는 왜 힘들다고 말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까? 왜 엄마는 강하기만 해야 할까? 엄마도 사람인데.





'숭고한 어머니의 사랑'과는 거리가 먼, 나의 이야기를 하나 해야겠다.


세 아이를 출산한 나는 첫째는 자연분만, 둘째와 셋째는 제왕절개 수술을 했다(둘째가 역아여서 어쩔 수 없이 수술했는데, 낳고 보니 아기 머리가 커서 다행이었다). 출산에 관한 재밌는(?) 이야기는 많지만, 첫째 아이를 자연분만한 이야기만 짧게 하려 한다.

길고 긴 진통 끝에 아이가 나왔을 때의 이야기이다. 정말로 내 몸에서 나왔다. 이건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을 때, 가정 먼저 든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우리 아이가 나왔구나.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내가 정말 엄마가 된다니. 아이는 건강하겠지?'

이런 생각이 들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딱 세글자.


'끝났다.'


정말 딱 그 생각밖에 안 떠올랐다. 출산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고, 산모가 아이와 박자를 잘 맞춰서 엄청난 힘을 줘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중간에 절대 포기할 수 없고 멈출 수도 없는 것.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것. 내가 끝까지 노력해야만 끝나는 일인 것이다.

마치 엄청난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했을 때의 안도감처럼, '끝났다.'라는 세글자만 떠오를 줄이야. 생각을 할 여유도 겨를도 없었다.


두 번째로 떠오른 생각은, 셋을 낳은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귀엽다(?).


바로 '다들 둘째를 어떻게 낳지?'였다.


우리 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는 나를 낳자마자 '우리 아기도 나중에 이 아픔을 겪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 아이는 자라서 엄마 걱정대로 아이 셋을 낳고...)


이렇게 아픈데 다들 둘째 낳을 생각을 어떻게 하는 건지, 정말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산사님께 말했더니, 다 잊는단다. 다들 까먹고 둘째를 낳는다는 것이었다. 너무 믿기지 않고 충격적이어서, 나는 절대로 안 까먹을 거라고 했었다. 허, 참....



러셀 로버츠는 부모들을 바보라고 했던 말에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만약 부모가 되는 게 어떤 거냐고 다윈이 내게 물어볼 만큼 잘 아는 사이였다면, 나는 벽난로의 불이 다 식고, 하늘이 다시 밝아 오고, 가로등이 다 꺼지고, 해가 떠올라 런던의 안개를 말끔히 걷어 낼 때까지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녀를 갖게 되면 자신의 부모에 대한 유대감이 생긴다고, 이전 같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방식으로 부모와 가까워진다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그 어떤 경험과도 다른, 하나의 대업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일종의 불멸 같은 거라고. 당신을 바꿔 놓을 거라고, 세상을 보는 방법이 바뀔 거라고 말해 주었을 것이다."





2주 뒤면, 형이 그렇게 기다리던 동생을 만나게 된다. 둘째 아이가 나왔을 때, 과연 어떤 생각이 먼저 들까?

모든 것을 준비한 만남이었지만, 계획대로 무탈하게 건강한 아이를 만나게 된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다.

우리는 안다.

엄마의 불편과 고통은 괴롭고 힘들지만, 바보처럼 다 잊게 될 거란 것을.

그 자리는 벅참과 안도, 그리고 새로운 각오로 채워질 것이다.



그래도 최대한 덜 아팠으면 좋겠다. 덜 괴로웠으면 좋겠다.

그래서 새로운 식구를 반기는 축하에 맘껏 기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는 또 한 명의 '바보'가 탄생한 것을 기꺼이 환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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