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나이듦에 대하여
"책에서 일본 이야기 나오잖아. 나도 나중에 애들한테 안 해줄 거야."
최근 독서 모임에서 함께 읽은 송길영 작가의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를 나누는 시간, 모임원 한 명이 결심하듯 던진 말이다. 다가오는 시대를 어떻게 대비할지 고민하게 하는 책이었다. 시대를 '예보'하는 책 내용에는 '나이듦'과 '시니어'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보다 많았다. 그렇다. 나이 드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지금'을 사는 우리는 '노년의 삶'을 마치 먼 미래처럼, 생각하길 미루고 있다.
독서 모임원이 말한 책 속 '일본 이야기'는 10여 년 전에 진행된 일본 노인의 연구 내용으로 시작된다. 일본의 노인들은 자녀가 이따금 찾아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저 자녀가 잘 살기만 하면 용돈이나 생활비를 주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본 노인들이 더 여유로운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이 일본보다 훨씬 높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의 부모들은 자식이 분가할 때 큰 금전적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 주고 안 받는 관계' 덕분에 노년에도 상대적으로 여유로울 수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과연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부모와 자식 간에 '안 주고 안 받는 관계'가 될 수 있을까?
자신도 일본 부모처럼 아이들에게 안 주겠다고 하는 모임원에게 바로 말을 이었다.
"언니, 막상 닥치면 그렇게 안 된다니까!
나도 아이 낳기 전에는 아이 낳아도 쇼핑몰 가면 내 옷부터 사러 가야지 했는데,
지금은 그냥 키즈 코너만 돌고 와. 애들 옷 사는 게 훨씬 재밌고 신나.
애들 초등학교 가기 전에는 가방 꼭 스스로 들게 해야지 했는데,
지금은 애들 보면 가방부터 받잖아. 가방이 너무 커. 너무 무거워.
양쪽 어깨에 첫째 둘째 가방 메고 다니잖아.
언니, 애들 결혼한다는데 진짜 아무것도 안 해줄 거야?
형부가 과연 그럴까?"
"막상 결혼한다고 하면 아무것도 안 해주기 힘들겠지?
나 결혼할 때도 기죽지 말라고 친정부모님이 챙겨주셨는데.
애들 아이 낳으면 절대 안 봐준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장담 못하겠다!"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멀게만 느껴졌던 마흔을 넘기고 '중년'을 맞이하니,
이제는 '노년'도 금방 다가올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직까진 정말 실감이 나지 않지만....
이제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겨줄 것인지 고민하는 동시에,
나 자신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를 묻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싶다.
내가 선택하고 살아내야 할 삶의 방식은 무엇인가.
정답도 없고 결과도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미래인이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나 미래에 대해 경고한다고 해도,
우리는 아이에게 더 주지 못한 걸 미안해할 것 같다.
머리로는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여전히 '부모'라는 이름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적당한 거리'일 것이다.
"애들이 정말 필요할 때는 도와줘야지. 그래도 우리 노후 자금까지 다 털어서 주지는 말자."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두는 것도 필요하지."
"우리가 건강해야 돼. 건강하고 자립적인 노인이 되어야 돼."
언젠가 (곧) 노년을 맞이할 우리들은 마치 선언문을 읽듯 사뭇 결연하게 말했다.
나이듦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지금부터라도 현명한 나이듦을 준비해야겠다.
그것은 나를 위한 일이자, 동시에 내 아이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아가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한 일이라고, 감히 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