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안주에 의한 복부비만으로 다이어트에 열을 올리기 전까지 남편은 매일 술을 마실 정도로 음주를 좋아했다.
반면에 나는 술을 전혀 하지 못한다. 술을 마시면 귀에서 윙윙 소리가 나면서 마치 다른 세계에 온 것처럼 내 앞에 놓인 모든 것들이 나의 현실과 맞지 않은 것 같아 토악질을 하고는 그 자리에 픽 쓰러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편과는 대략 십여 년 전부터 함께 술을 마시지 않았고, 회식자리에서는 물만 연거푸 마시고 있다.
처음부터 음주 후 이명이 들리는 증상이 있었던 건 아니다. 직장생활 이후 언젠가부터 생겨 그 언젠가부터 술을 입에 대지 않는 것이다.
"우리 술 마셔 볼래?"
가장 친한 친구 H는 엄마가 외출하셨다고 나를 집에 초대하고는 음주를 제안했다.
우리는 열다섯 중학교 2학년이었다. H는 성격이 서글서글하고, 귀염성 있는 외모를 하고 있어 반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반장이었다. 그런 그녀의 짝이라는 이유로 완전한 아싸였던 나는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가 돼버렸다.(나는 그때 네모 안경테를 귀에 두르고 펄벅의 대지와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을 읽고 있는 아이였다. 중2. 허세가 참... 쩔었다.)
H는 냉장고 문을 열고 우측 음료수 놓는 칸에서 막걸리 한 병을 꺼내왔다. 막걸리 뚜껑은 이미 열렸다 닫힌 상태였고(H의 어머니가 드시다만 것으로 기억한다.) H는 티만 안 나게 조금만 마시면 된다며 유리컵을 하나 가져와 따르고는 내게 건넨다.
H는 학창 시절 가장 친한 친구와 이런 걸 꼭 해보고 싶었다고 하며 기대 어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숨도 쉬지 않고 한 번에 다 마시고 나니 조금 있다 얼굴에 열기가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붉어진 얼굴로 H를 바라보는데 웃음이 나왔다. 이 상황이 어이없기도 했지만 또한 지금이 그렇게 고마운 생각이 들어마냥 웃음이 나왔다.
운 좋게 인기 있는 친구와 단짝이 되었고, 그 단짝의 집으로 초대받은 영광을 누렸으며, 학생일 때 친구와 술을 마시고 싶었는데 마침 그때의 친구가 나여서 행복하고 고마웠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떠보니 H는 내가 삼십 분 정도 잠들었다고 한다.
나는 개운한 듯 몸을 쭉 폈다 자리에 일어났고, 그때부터 술은 고맙고 기분 좋은 마음을들게 하는 마법의 물로 인지하게 되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많은 술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나는 술에 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장단을 맞추며 대화를 한다.
어떤 이는 자신의 과거를 자랑스러워하면서 과거로 돌아가고, 어느 이는 현실을 이야기하며 미래를 염려한다. 많은 장르의 이야기들이 술자리에 가득해지면 나중엔 깊은 한숨과 울음 섞인 울먹임도 들리기 시작한다. 그럴 땐 나도 이들처럼 술을 마셨다면 같이 숨을 토해내고 쓴 눈물을 보였을 것이라며 주억거린다.
지금 나는 술을 마시면 이명이 들릴지 들리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도 이명이라는 핑계로 나는 계속 술을 마시지 않는다. 혹시라도 나의 짊어진 버거움이 음주에 의해 새어나가기라도 한다면 그 이후의 시간은 더욱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아서다.
고마움과 즐거움이 아닌 원망과 미움, 변명으로 가득 찰 것과 그것에 넌더리가 난 희망이 사라질까 겁이 난다.
가끔 그 때가 그립다. 처음 친구와 함께 마신 쉰내 나는 막걸리 뒤에 그 순간이 고마움으로 가득 찼던 시간이 참 그립다.
남편과의 마지막 술자리
둘째를 낳고 모유수유를 끊은 겨울의 어느 날.
눈이 엄청 내려 모든 길엔 눈이 높이 쌓여 갔다.
나와 남편은 삼겹살집에서열심히 삼겹살을 구웠다. 소주 한 병도 주문하면서.
애 둘 보느라 고생이 많다며 남편이 소주를 소주잔에 반컵 정도 따라주었다. 그러기를 세잔 마시고, 삼겹살로 든든히 배를 채운 뒤 집으로 향했다.
"D 아빠 나 이상해"
앞서 나간 남편이 뒤돌아보는 사이 나는 쌓인 눈 위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다행히 무릎이 먼저 땅에 닿아 얼굴이 땅바닥에 닿지는 않았다.
힘이 완전히 풀린 다리는 일어서지 못했다.
"D 엄마 왜 그래? 괜찮아"
내 어깨를 부축한 남편이 나를 들어 올리지 못하자 앉는 자세를 취한다. 그대로 업힌 상태로 집에 돌아가는데 남편이 끙하며 한마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