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글을 씁니다.

샤프

by 온결

이름처럼 살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어.


담백하게 그려진 날보다

얼기설기한 날들이 많아

자리잡지 못한 삐뚤어진 태도와

어찌할 바를 모를 흐려진 흔적들로

범벅되어 있지.


기운 내 보자며

더 굵고 진한 심지로

채워보려 했지만

내겐 버거웠는지

처음부터 엇나가기만 하더라.


그래서 숨어버렸어.

필통 구석진 곳에 몸을 누이고

눈을 감아 버렸지.

덜그럭, 덜그럭

바깥에 다녀온 이들이

부산을 떨어도 모른 척하고

새로운 이가 말을 걸어도

못 들은 척했지.


"오랜만이다"

낮은 자리에서 울리는 소리가 낯익어

내려다보니

한참 보이지 않던 연필이

손을 흔들고 있네.


"괜찮아?"

낡고, 작아진 모습에

가련한 마음이 들어 묻는데

누가 들어도 하찮은 이야기를

영웅이 된 것처럼

지나온 길을 신나게 말하는 거야.


"사람들이 뭐라 안 그래?"

가장 궁금하기도 했던,

제일 걱정되기도 했던 말을 꺼냈어.


"당연히 뭐라 그러지

그렇게 살면 안 된다

원래 이건 이렇게 해야 한다

이리 나약해서 끝까지 하겠냐?

심지어 내 존재를 부정하기도 하더라

아예 없었던 것처럼

그래도 어쩔 거야?

이게, 난데!"


연필은 잠시 쉬러 왔다며 자리에 누웠어.


"정말 삐뚤빼뚤 해도 돼?

우왕좌왕하면서 정신없어도 돼?"


"뭐 어때?

그것도 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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