꽂은 꽃 한송이

by 빛나다

띠링


메신저 하나 떠 열어보니 얼마 애써 낸 제출서식이 변경되었으니 다시 제출하라는 내용이 뻔뻔하게 늘어져 있다.


헐!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최선을 다해 보냈는데 다시 자료를 찾고, 검토하고, 고쳐야 하는 과정을 또 반복해야 하다니.

하. 하. 하. 머리에 꽃 꽂고 당장에 본부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대차게 "진작 이 서식으로 주지 이제와 바꾸는 것이 말이 되냐! 똑바로 일 해라!"라고 말하고 싶은 걸 앞길이 구만리나 남은 직장인으로서 누군가의 찍힘의 대상이 되는 건 피하고자 나오는 분노를 꾹 꾹 참으며 바뀐 서식을 찬찬히 아주 찬찬히 심호흡해 가며 훑어보았다.


하. 하. 하. 이 모든 게 노답으로 보이다니. 헛것을 보는 게 분명하다. 아니면 나라는 인간은 서식이라는 이 작은 것의 변화에도 순응하지 못하고 어깃장만 늘어놓는 불평만 하는 자인 지도 모른다.

본부 담당자가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만든 엑셀 앞에서 한숨만 계속 나온다. 그는 알까? 나름 고생해서 만들었을 서식을 가지고 누군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마우스를 이용해 서식에 놓인 커서를 요란하게 마구 움직이며 화풀이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아도 뭐... )


'당신이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바뀌어졌다면 다 바뀐 이유가 있겠지요. 나 또한 잘못이 있지요. 서식이 변경될 것과 변경될 내용을 예상치 못하고 매우 순수하게 이제 끝이다 하고 긴장을 푼 과거의 나를 탓해야지요. 하. 하. 하.'


본부 담당자에게 전화만 안 했지 내 상태는 지극히 머리에 꽃 꽂고 넓은 들판을 해맑게 돌아다니는 도른 자가 된 상태다. 아무 말이나 내뱉으며 창밖을 바라본다.

내 마음은 아무 잔치를 벌이며 속이 시끄러운데 창밖은 참 고요하다. 인도를 걸어가는 사람들, 지나가는 자동차 그리고 더없이 하늘색인 하늘.


'세상은 이리 평화로운데...

......

나만 이러고 있으면 안 되지!

나도 평화로와야지!'


나만 세상과 단절되며 혼자 들판을 뛰놀 수 없다는 판단이 눈앞에 보이는 창밖 세상으로 향한다. 그리고 곧바로 탕비실로 걸어가 완벽하게 진한 커피를 꺼내 비장하게 티스푼을 휘두른다.

점점 휘몰아치는 커피 소용돌이 가운데에 내가 우뚝 서 있고 바뀐 서식이 소용돌이 사이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며 나의 신경을 거스르면 나는 티스푼으로 힘차게 때려눕히고는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나는 자리로 돌아와 키보드에 두 손을 얹고 손가락에 빠른 리듬을 주며 오로지 눈앞에 보이는 변경된 서식에만 집중한다. 한참 동안.


꽂혀있던 꽃 한 송이가 점점 희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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