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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논이Noni Oct 21. 2022

저녁 공원에서 홀로 울던 낯선 아이를 돌보고 받은 대접

제주도 인심에 반했습니다

 신비로운 파스텔톤의 초저녁 하늘을 바라보며 느린 산책길에 나섰습니다. 보랏빛이 감도는 분홍색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풍경화처럼 고즈넉한 모습으로 자리한 범섬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저녁노을이 사라질 즈음 발길을 돌리니 짙은 어둠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제주도에서 살게 된 지도 1년이 다 되어갑니다.


 작년까지 영국에서 살다 귀국해 아는 이도 없고 지명도 들어본 적 없는 표선에서 한달살이를 하며 감귤밭을 비롯한 제주의 마법 같은 아름다운 자연으로부터 치유와 영감을 얻고 서귀포로 와 1년을 더 살기로 한 것이 작년 늦가을이었는데 이제 완전히 이 마법 같은 섬에 정착을 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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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shinyartist/69


 해외에서 집시처럼 이나라 저나라 떠돌며 10년이나 머물렀지만 어쩌다 보니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제주도에 정착하게 되어 이제 서울 같은 대도시에선 결코 살 수 없을 것 같은 반 자연인이 되어버린 저를 발견하게 니다. 아무래도 제주도는 저처럼 해외를 떠돌다가 귀국한 한국 사회 부적응자가 살기에 최적의 장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감귤빛 햇살 쬐고 밀감이 오밀조밀 익어가는 싱그러운 귤밭,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매력적인 까만 돌담,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허전한 제주도의 상징 웅장한 한라산,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봉긋 솟은 오름들,

 에메랄드빛 바다가 이룬 제주만의 아름다운 풍광과 깨끗하고 맑은 하늘

 그리고 자주 만나는 귀여운 동물들(말, 토끼, 길고양이, 들개-가끔은 무섭지만-, 꿩, 동박새 등등)은 이제 내 안에 깊숙이 파고들어 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떼고 싶지 않은 삶의 한 부분이 되어버렸습니다.


법환동의 마스코트 행운이. 경주마였다가 은퇴 후 조용히 살고 있는 18세 백마입니다
나의 동네 베프 엘리자베스
길가다 만난 이쁜 아가들~
수채화로 그린 동백꽃
아름다운 나비도 자주 만나요♡
저녁 노을이 아름다운 서귀포
지나가다 보고 반한 제주도 빵집. 커플과 당나귀, 고양이를 마음대로 그려 넣었어요. 노니 그림 2022

 

행복해지려면 가족과 친구와의 강한 유대감 못지않게 자연과의 깊은 유대감이 필수적이라고 환경 심리학 전문치료사들은 믿습니다. 책 '혼자 사는 즐거움'에서 자연의 지혜는 위대하다고 사라 밴 브레스낙은 말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매일 자연과 가까이하고자 산책을 하려 시간을 냅니다. 시골길을 걷다 만나는 귤밭의 주홍빛 동그란 귤들은 바라만 봐도 기분이 좋아져 마음이 반짝거리는 느낌을 받고, 코에 난 모공처럼 구멍 숭숭 뚫린 투박한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돌담길을 걸으며 불안감이 멀리 떠나가고 잔잔한 바다처럼 차분해집니다.


 지난 금요일엔 일도 손에 안 잡히고 꿀꿀한 하루를 보내 마음 좀 반짝이게 하려고 제가 사랑하는 명당에 잠시 들러 범섬, 귤나무, 칸나꽃, 토끼 등의 아름다운 생명체를 만나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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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brunch.co.kr/@shinyartist/113

 



 초저녁 어스름 속 산책 끝에 집 근처 도서관 문화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처음 보는 생명체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저기 혹시 지금 몇 시예요?"


 처음 보는 작은 어린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제게 다가와 시간을 물었어요. 안경을 낀 긴 머리 소녀였어요. 어둑어둑해지는 저녁에 홀로 공원에서 두려워하는 모습에 무슨 일이 생겼음을 감지한 저는 시간을 알려주자마자 무슨 일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울먹이며 대답했어요.


 "엄마가 도서관에서 책 읽고 있으라고 데려다주셨는데 도서관이 문을 닫았어요!"


 매주 금요일은 모든 서귀포 도서관의 휴관일인걸 깜빡하고 아이의 어머님은 아이를 도서관에 내려주고서 지인을 만나러 갔고,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문닫힌 도서관 앞에서 망연자실하며 울고 있었던 거예요. 엄마는 한 시간은 더 있어야 온다고 했고 아이는 날이 더 어두워지자 겁에 질려 시간을 물으러 제게 왔던 것이었습니다.


 "엄마한테 전화해볼까? 번호가 어떻게 돼?"


 아이는 저보다 이미 앞서 누군가가 엄마에게 전화를 했고 문자까지 보냈지만 무응답이었다며 다시 울기 시작했어요. 그런 아이가 가여워 전화번호를 재차 묻고 통화시도에 문자까지 보냈지만 어머님은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이 작은 아이가 불안을 느끼는 게 안쓰러워 계속 말을 걸고 엉뚱한 질문을 던졌어요.


 "앗 저기 별 떴다! 되게 크네!"

 "아까 봤어요."


 아이는 시크하게 대답했습니다.


 "밥은 먹었니?"

 "네. 저녁밥 먹고 왔어요."

 "다행이다. 서럽고 무서운데 배라도 불러야지. 배고프면 더 서러워~ 난 오늘 고구마랑 포도, 사과만 먹고 밥은 아직 안 먹었어. 아 배고프다~"

 "어떻게 그렇게만 먹고살아요?"

 "그러게~ 오늘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근데 왜 이렇게 배가 고프냐!? 아! 밥 먹고 싶다!!"


  역시 밥에 죽고 밥에 사는 한국인인가. 뜬금없는 밥 이야기에 아이는 얼굴에 미소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알고 보니 아홉 살, 초등학교 2학년이라고 합니다. 형제, 자매가 있냐고 물으니 약간 쑥스러워하며 4남매 중 막내라고 하길래 나도 4남매 중 셋째 딸이라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런저런 이야기 꽃을 피우니 아이의 얼굴이 하늘의 별처럼 환해지기 시작합니다. 역시 아이들은 단순해서 예뻐요. 아무리 서러운 일이 있어도 화제가 바뀌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밝아지기 때문이죠. 아이의 밝아진 얼굴을 보며 저도 덩달아 밝아졌습니다.


 "이 공원에 사는 고양이 보러 갈래? 고등어 줄무늬 길고양이인데 수다쟁이야."


 아이를 데리고 공원 한쪽에 가자 때마침 고양이가 야옹거리며 다가왔습니다. 이 동네 왕초인 고등어 길냥이는 말도 많고 애교도 철철 넘쳐 동네 애묘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비록 길고양이지만 밥도 제때 늘 얻어먹고 털에 윤기도 좔좔 흘러 마치 부잣집 반려묘 같은 인상입니다. 수다쟁이 고등어냥은 기분이 좋은지 우리가 다가가자마자 가르랑 거리며 골골 송을 목청껏 뽑기 시작했고 편안한 식빵 자세로 앉아 우리가 만지는 손길을 즐겼습니다.


 "저 고양이 태어나서 처음 만져봤어요!"


 고양이를 난생처음 만져본다는 아이가 새로웠습니다. 집에 고양이는 없지만 골든 레트리버를 키운다는 얘기에 저는 환호성을 질렀고 아이는 으쓱해하며 개 이름도 알려주고 반려견 이야기에 신이 났어요.


그땐 사진을 찍지 못했지만 평소 낮에 보이는 모습은 이렇습니다.


<고양이 좋아하시는 분들은 클릭하세요!>

https://brunch.co.kr/@shinyartist/78


 고양이는 제가 준 간식을 먹고나더니 그루밍을 잠시 하고 우리 곁에 다가와 마치 일행 인양 자연스러운 자세로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그렇게 30분가량을 어두운 공원 벤치에서 아이와 함께 했지만 아이 어머님은 여전히 무응답이었고 아이와 약속한 시간에 오시려면 30분은 더 기다려야 했어요. 할 일이 산더미같이 쌓여 집에 가야만 했던 저는 아이에게 아버지 전화번호를 물었고 전화벨이 울려 스피커폰 버튼을 눌렀어요.


 "여보세요?"

 "아빠~!!!"


 아이는 아빠 목소리를 듣자마자 다시 울먹거리기 시작했어요.


 "오 우리 기쁨이구나!"


 아이와 제게서 자초지종을 들은 아버님은 아이더러 엄마에게 연락할 테니 일단 맥 XX드에 가 있으라고 했고 저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거듭하시며 집으로 놀러 오라고 하셨습니다. 빈말일지라도 듣기 좋았어요. 예의상 하신 말씀인걸 알았지만 정말 인절미(골든 레트리버) 보러 가? 하는 마음도 스멀스멀 올라왔죠. 이것이 말로만 듣던 제주도 인심인가요?


 아이와 맥 XX드 앞에서 작별인사를 하고 마트에 들러 식재료를 사서 집으로 돌아오니 어느새 8시가 넘어있었고, 늦은 저녁 밥상을 허겁지겁 차려 먹으며 폰을 보니 장문의 문자가 한통 와있었어요.


어머님의 문자에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여리고 약한 어린이가 홀로 어둠 속에 울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함께 보낸 시간으로 따뜻한 제안을 받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식사초대는 감사하지만 완전 채식을 하고 있는 저로 인해 메뉴 선정에 불편을 겪으실까 봐 밥 대신 차 한잔 함께 하기로 정하고 다음날 2시에 카페에서 두 모녀를 다시 만났습니다. 엄마 곁에서 어제보다 한층 밝아진 얼굴의 아이를 보니 마음이 놓였고 아이 어머님은 재차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어제 집에 가는 차 안에서 기쁨이가 그러더라고요. 세상엔 아직 좋은 사람이 있어 다행이라고. 그리고 자기도 이제 인맥이 생겼다며 좋아하네요."


 제가 어렸을 때 친척집에 갔다 길을 잃어서 지나가던 어른한테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었어요. 대학생 오빠로 보이던 그분이 경찰서까지 직접 데려다주시고 껌 한 개를 제 손에 쥐어주셨던 그 따뜻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곤경에 처했을 때 누군가가 친절을 베풀고 도움을 준 경험은 평생 마음에 남아 따뜻한 온기를 잃지 않아요. 제가 오래전 낯선 이에게 받은 보석 같은 선물을 누군가에게 고스란히 다시 전해줄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요.


 기쁨이가 커서 곤경에 처해 울고 있는 어린이를 돕는 상상을 해보니 절로 흐뭇해집니다. 하루에 작더라도 착한 일 한 개씩 행하기를 실천하려 애쓰는 요즘, 살맛이 나는 것 같아요.





추신 - 이름이 두 개나 있는 기쁨이는 아이의 가족들이 부르는 애칭입니다. 처음엔 잘못 듣고 쪼꼬미가 애칭이니? 묻자 아이는 아니요!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그럼 쭈꾸미? 아뇨 기쁨이!! 학창 시절 영어 듣기 평가를 항상 죽 쑨 이유는 귀가 잘 안 들려서입니다.. 어떻게 기쁨이를 쪼꼬미로 잘못 듣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제가 그린 제주도 풍경화를 감상해보실까요?

제주 범섬. 오일파스텔. 노니 그림


아래부터는 제가 그린 별빛 밤하늘 그림입니다.

캔버스위에 아크릴. 노니 그림.
창작 동화 별이 된 나비. 종이 위에 아크릴. 노니 그림
뉴질랜드 장미. 캔버스 위에 아크릴. 노니 그림
Reach for the stars. 캔버스 위에 아크릴. 노니 그림




세상에서 제일 작은 교회. 캔버스 위에 아크릴. 노니 그림
열반. 종이 위에 혼합재료(수채, 잉크, 수채색연필). 노니 그림 2021



연꽃 코끼리. 종이 위에 혼합재료(수채물감, 잉크, 아크릴, 수채색연필) 노니 그림
영국에서 작업하던 한 때. 2015




밤 하늘의 별을 그리는 걸 좋아합니다.



원래는 꽃그림 전문입니다.



수채화로 그린 꽃그림 모음. 노니 그림



모두 외국에서 캣시터하며 만난 고양이들입니다. 캣시팅 끝나면 선물로 주고 떠났어요



집시 노마드 그림쟁이의 그림을 감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많은 그림보러 놀러오세요~

https://www.instagram.com/nonichoi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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