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여름에 쓴 글입니다.)
2012년 여름, 휴가를 내고 엄마, 시어머니, 두 아이와 함께 프랑스로 여행을 떠났다. 첫째는 다섯 살이었고, 둘째는 두 돌이 채 되지 않을 때였다. 노약자라고 할 수 있는 어머니들, 어린아이들과의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나를 사람들은 마치 잔 다르크 보듯 했다. 그것이 틀린 짐작은 아니어서 나는 그해의 여행을 극기 훈련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후의 여행에서도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감정의 동요가 그해만큼 크진 않았다. 다행히 무사히 여행을 마쳤기에 그때 일을 추억 삼아 이야기하지만, 심장이 타들어 갔던 그 일을 처음부터 다시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하다. 열두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이 선명하다.
첫 사건은 파리에 도착한 다음 날 오후 네 시경 오페라 주변의 한 아파트 호텔에서 일어났다. 로댕 박물관에 갔다가 둘째가 박물관 입구에서 숨이 넘어가도록 우는 통에 경황이 없는 일정을 이미 한바탕 보낸 뒤였다. 박물관 관계자는 아기띠 안에서 버둥거리며 목청껏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달래느라 여념이 없는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아니면 우리의 소란으로 다른 사람들이 방해받을까 걱정되었는지, 옆문으로 우리 일행부터 급히 입장시켰다. 쉬었다가 다시 나가려고 호텔에 막 들어오던 참이었다.
카드키로 문을 열었다. 예상치 못한 광경에 들어가지 못하고 멈칫했다. 한 남자가 소파에 앉아서 문을 열고 들어오려다 멈춰 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들에게 뒤로 물러서시라고 손짓한 다음, 하얀색 아랍 전통 의상을 입은 그 남자에게 누구시냐고 물었다. 그 남자는 오히려 나에게 누구냐고 묻는다. 여기는 우리 방이라고 말했더니 아니라고, 자기 방이라고 한다. 딸과 여행 중인데, 외출했다가 먼저 들어왔다며 곧 딸이 올 거라고 했다. 순간적으로 그 남자의 말을 믿을 뻔했다. 그 남자가 곧바로 나를 공격할 것처럼 보이진 않았기에 살며시 한 걸음 방으로 들어가 리셉션으로 전화를 걸어 “우리 방에 누가 있어요.”라고 알렸다. 그러기가 무섭게 쿵쾅쿵쾅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건장한 남자 직원이 방으로 들어가 남자를 끌어내려고 한다. 남자는 저항했다. 이어 매니저로 보이는 여자 직원이 올라와서 그 남자에게 소리를 마구 지른다. 영문도 모르는 채로 나는 벌렁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멀찍이 떨어져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두 어머니께는 아이들 데리고 리셉션 근처에 가 계시라고 진작 말해 둔 터였다. 결국 남자는 직원에 의해 거의 끌려 나가다시피 했다.
상황이 진정되고 매니저가 우리 방으로 와서 자초지종을 들려주었다. “딸 가족과 함께 우리 호텔에 투숙하고 있는 분이 맞아요. 3층에 묵고 있는 분인데, 외출했다가 가족들과 떨어져서 먼저 숙소에 와서 쉬고 있었대요. 그런데 리셉션에 객실 번호를 잘못 말했나 봅니다. 리셉션 직원이 미처 숙박 대장을 확인하지 않고 그분이 말한 객실 카드키를 준 모양이에요. 혹시 없어진 물건은 없는지 제가 있을 때 한번 점검해 보세요. 오늘은 체인 호텔 객실까지 예약이 다 차서 바꾸기 어렵고 혹시 원하시면, 내일은 옮겨 드릴 수 있어요.”
그 남자가 방에서 나가지 않으려고 완강히 버티다가 거의 몸싸움에 가까운 실랑이 후에 끌려 나간 것이어서 두려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혹여라도 다시 찾아와 해코지할까 봐 걱정도 되었다. 여기 있자니 찝찝하고, 다섯 명의 가족 짐을 다 풀어놓았는데 짐을 다시 싸서 다른 호텔로 가자니 번거로웠다. 어떻게 할지 두 어머니와 상의했다. 어머니들은 호탕하게 결론을 내려 주셨다. “아까 그 양반이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더라. 할머니 둘이나 있는 방인 거 용케도 잘 알고 우리 방에 떡하니 들어와 있었네. 하하하. 다른 데로 옮기자면 번거로운데 그냥 여기서 지내자.”
그날 나는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밖에 누군가가 와 있지 않은지 문구멍을 수시로 들여다보며 보초를 서다시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그때는 두려운 마음이 너무 컸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디기가 어려웠다. 아마도 나와 함께하고 있는 네 사람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큰 사건이 여행 초반에 일어났다면 확률적으로 그다음부터는 여정이 순탄해야 마땅할 것이다. 파리 일정을 마치고 기차를 타고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 도시인 알자스 지방의 스트라스부르로 갔다. 스트라스부르에 머문 지 이틀째 되는 날 또 사건이 일어났다. 구시가를 감싸고 흐르는 일 강을 따라 도는 유람선 바토라마를 오전에 탔는데, 이미 한낮의 뜨거운 햇볕이 머리로 쏟아져 내렸다. 구텐베르크 광장에서 아이들 회전목마를 태워 주고 트램을 타고 호텔에 휴식을 취하러 들어왔다.
모두 너무 피곤했기에 근처 맥도널드에서 사 온 햄버거로 배를 채우고 낮잠에 빠져들었다. 두 어머니와 둘째가 먼저 잠들고, 나도 눈이 감기기 일보 직전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잠이 없고 세상 만물에 호기심이 가득한 첫째가 잠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첫째만 두고 먼저 잠이 드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참을 수 없이 쏟아지는 졸음에 무장 해제되고 말았다. 얼마간 잠이 들었다가 눈이 떠졌다. 본능적으로 첫째가 어디 있는지부터 찾았다. 그런데,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후다닥 몸을 일으켜 객실을 샅샅이 뒤졌다. 욕실에도, 욕실과 분리되어 있는 화장실에도 아이가 없다. 내가 아이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는 소리에 어머니들이 깨셨다. 아이가 스스로 나갔거나, 누가 방에 들어와 아이를 데리고 나갔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밖으로 나가보려고, 신발을 넣어 둔 작은 옷장 문을 힘껏 열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아이가 몸을 구부리고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하고 나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흐느꼈다. 자다가 깨, 엄마가 우는 모습을 처음 본 아이가 “엄마, 엄마” 하면서 따라 울었다. 나는 죽다가 살아났다. 아이가 닫힌 공간을 무서워했기에 그렇게 비좁은 옷장에 들어가 있을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모르는 사람이 방에 들어와 있었던 파리의 사건보다, 사실은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스트라스부르 사건에서 받은 심리적 충격이 훨씬 컸다.
다가오는 10월, 첫째 아이와 둘만의 프랑스 여행이 예정되어 있다. 열일곱 살이 된 아이는 나에게나 아이지 어른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전적으로 돌봐야 했던 2012년의 다섯 살 아이가 아니다. 옷장에 들어갈 수 있는 덩치도 아니다. 프랑스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그간 프랑스어 공부를 꾸준히 해서 이제는 여행에서 만나는 프랑스 사람들과 직접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대신 음식을 주문해 줄 일도, 대신 물건을 사 줄 일도 없을 것이다. 아이는 여행 중에 발레 강좌에 참여하고 싶다며 비용과 시간을 알아보고 있다. 케브랑리 박물관과 외젠 들라크루아 박물관은 꼭 가야 한다고 이미 선언했다. 나도 박물관을 좋아하지만, 아이만큼은 아니다. 아이가 박물관에 들어가 그림 하나하나, 조각 하나하나 꼼꼼히 살피는 동안 나는 나대로 할 일이 있다. 카페에 앉아 책을 읽거나 책방이나 시장 구경을 할 것이다. 파리에서 우리는 각자 할 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