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 친구가 있는데

by 꽃마리

요즘 들어 1994년 초봄부터 초여름까지 알고 지낸 대만 남매 생각이 나곤 한다. 나는 그들의 이름도 모르고 있고 헤어질 때 제대로 인사를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프랑스어를 아주 잘했던 누나의 선한 얼굴과 잔잔한 목소리, 키가 커다랗던 남동생의 웃는 얼굴만 기억하고 있다.


나는 그들을 프랑스 중부의 작은 도시에 있는 한 호텔 방에서 처음 만났다. 자주 드나들던 C의 방에서였다. ​사진작가였던 C는 사진을 더 공부하려고 프랑스에 와 있었다. 불어불문학과 대학생이던 나는 1년간 휴학을 하고 C보다 한 달 늦게 프랑스에 도착한 터였다. 어학원 복도에서 우연히 만나 인사를 나눴다. C는 프랑스에 와서 처음 프랑스어를 배우다 보니 너무 힘이 든다고 말했다. 그래서 틈틈이 만나 프랑스어 공부를 함께하기로 했다. 고등학교 3년간 프랑스어를 즐겁게 배웠고 프랑스어가 너무 좋아서 대학 전공도 불어불문학을 택했으니 초급 문법을 알려주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C는 어학원에서 가까운 호텔에 머물고 있었다. 편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공부할 장소로 C의 방은 더없이 적합한 곳이었다.


C의 방에 들러 C가 만들어 주는 한국 음식을 먹으며(C의 방에는 간단한 조리 도구가 비치돼 있었고 C는 요리를 참 잘했다) C가 프랑스어 문법 기초를 다질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던 어느 날 C가 말했다. 호텔 옆방에, 대만에서 온 남매가 산다고 했다. 내가 다녀간 걸 남매가 알게 되었는데, 누구냐는 물음에 얼떨결에 나를 친동생이라고 소개했다고 했다. 근처 여자 기숙사에 사는 여동생이라고 둘러댔다고 했다. 젊은 여자가 주기적으로 호텔 방에 찾아오니 남매는 나를 C의 애인이라고 짐작했을 수도 있다. 그런 오해를 막자고 C는 나를 친동생이라고 설명했을 것이다.


어느 날 C의 소개로 대만 남매와 정식으로 인사를 나눴다. 그때라도 혈육이 아니라고 정정했으면 됐을 텐데 그게 뭐라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결국 나는 C의 친동생 연기를 성실히 수행하는 쪽으로 노선을 정했다. 첫 만남에서 남매 중 누나가 내게 수교 이야기를 가볍게 꺼냈다. “한국은 대만하고 왜 수교를 끊었어요?” 한국은 1992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는 단교했다. 대만을 하나의 나라로 인정하지 않는 중국이 수교하는 조건으로 대만과의 단교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진 일이었지만, 단교를 당한 국가의 일원으로부터 그런 말을 듣고 보니 다 내 탓인 것만 같았다. 나는 괜히 미안한 표정만 짓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민간인의 교류가 단절되는 것은 아니지만, 단교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분위기는 쌀쌀하기가 그지없었다.


남매가 프랑스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지 또는 하고 싶은지를 물어보았다면 지금 내가 남매에 대해 갖고 있는 정보는 이처럼 빈약하지 않았을 것이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짜 남매 정체가 들킬까 봐 궁금한 질문들을 꺼내지 않았던 것 같다. 동생은 나의 가짜 오빠처럼 이제 막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한 듯했다. C의 방에서 우리는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대화를 나누곤 했다. TV로 뉴스를 보다가 보도 내용에 대해 누나가 배경을 설명해 준 적이 있는데, 그때 C가 누나의 프랑스어 실력에 감탄을 표했다. 그러자 누나는 겸손한 표정과 말투로 동생(=나)도 모두 이해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언니였을 누나는 언어를 비롯한 모든 면에서 우리 모두의 대장이었다.


우리 넷은 주말에 차를 빌려 남쪽으로 여행을 가곤 했다. 운전은 대만 남매가 번갈아 가면서 맡았다. 숙소는 목적지에 도착해서 구했다. 적당해 보이는 호텔에 들어가서 방을 구한 뒤 짐을 풀어놓고 주변 산책을 했다. 니스, 칸, 모나코 등 지중해 도시들을 돌며 파란 하늘과 바다가 한 몸인 것처럼 느껴지는 풍광을 즐겼다. 밥심으로 사는 아시아의 젊은이들은 꼭 쌀과 밥솥을 챙겨 가서 호텔 방에서 밥을 지어 먹었다. 한번은 빌린 자동차에 누가 타이어 펑크를 내고 유리창을 깨 놓고 간 일도 있었다. 어떻게 수습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그때도 대장의 진두지휘로 문제를 원만히 해결했을 것이다. 여행이 끝나면 경비를 4로 나눠 부담했다.


지중해에 떠 있는 하얀색 요트를 배경으로 누나와 내가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 진초록색 스웨터를 입은 누나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고, 나는 누나 쪽으로 몸을 약간 틀고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데, 역시 편안하게 웃고 있다. 머리에는 C가 빌려준 검은색 야구 모자를 쓰고 있다. 먼 기억 속에서 따듯한 햇살을 맞으며 편안히 걸었던 그날이 떠오른다.


얼마 전, 30년 만에 처음으로 그 도시를 찾았다. C가 살던 호텔이 그대로 있었다. 창문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C의 방에서 두 남매가 낯선 외국어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그리다 조용히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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