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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yking Aug 05. 2021

서른 살의 장마 (1)

#1. 아무런 불행이 없는 일상 속에서 우울함과 만났다.

'나는 언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 수 있어요?'


이것은 대한민국의 여아로 태어나, 하고 싶었던 재밌는 놀이를 다 내려놓고 하기 싫어 죽겠던 공부를 억지로 하기 시작하는 어린이 시절을 지나, 모범적으로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을 보내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또 하나의 입시를 다시 치러 전문직을 취득하고, 사회에 나와서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번듯한 외국계 회사에 취직하게 된 후 가지게 된 첫 의문이었다. 나는 언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 사실 돌이켜보면 억지로 여기까지 왔다고는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 또한 내 꿈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준비하고 갈망해온 나의 ‘계획된’ 꿈. 그리고 나는 결국에는 노력 끝에 계획했던 것을 다 이룬 뒤였다. 시간이 오래 걸린 일은 있었지만, 계획했는데 실패한 일은 딱히 없는 아주 성공적인 결말이다. 영화로 따지자면 아마 ‘그리하여 주인공은 마침내 성공하여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라는 마침표와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실제 삶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문제가 생긴다. 목표하는 바를 산행으로 비유하였을 때, 산의 정상에서 바라보아야 문득 ‘자. 그래 이제 다 올라왔어. 이제 무얼 하지? 아니, 내가 여기로 올라오려고 했던 이유가 무엇이지?’라는 허망한 물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정상에서야 비로소 숨을 돌릴 수 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생각을 할 시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올라가는 동안에는 힘들고 지쳐있는 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일단 시작했으니 끝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모범생 특유의 미덕으로 우선은 쉬지 않고 직진한다. 의지를 다지고 온갖 욕구들을 억누르기 바빠 “내 마음”은 안중에도 없을 확률이 아주 높았다. 나는 마침내 이 문제로 괴롭고, 지치고, 무기력해져 버렸다. 아마도 외국계회사 입사 후 한 한 달가량은 자랑스러운 얼굴로 “나 마침내 이렇게 여기까지 왔어.”라고 말하고 다닐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 해에 바라오던 좋은 직장에 들어갔고, 오랫동안 연애해온 사랑하는 연인과 결혼에 무사히 골인하였다. 그렇게 남들 보기에는 아무런 걱정 없고, 아무런 불행이 없는 일상 속에서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지독한 우울과 만났다. 그동안 남들 보기에는 분명  힘든 시기를 많이 거쳐왔는데, 정작 나 자신은 왜 영화 속 해피엔딩과 비슷한 지금 이 평온한 시기에 이런 지독한 우울이 나에게 찾아왔을까 이해가 잘 되지 않았고 도대체 왜 그러냐고 스스로 많은 질문을 했지만, 대답도 중요하지 않았고 이건 그냥 ‘사실’이었다.

나는 이 문제로 괴롭고 지칠 때마다 서점에 콕 박혀서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의 에세이를 읽게 되었는데,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지?”를 재차 고민하고 있는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우리가 잘 알고 있을 법한 선현들의 명언에서부터 이제 막 서른이 된 사람들이 현실에 맞추어 써 내려가는 에세이까지. 아마 인류의 생활방식과 사회적 체계들이 발달하고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도 인간들은 늘 “나는 누구인가?”를 찾아다녔던 것 같다. 그 불변의 진리와 같은 현상이 재미있기도 했고, 외로웠던 내 마음에 위안이 되기도 했다.

 언젠가 진로 고민을 하던 날, 어느 술자리에서 내가 이러한 이유들로 괴롭다는 속마음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는데, 친구 한 명이 위로 겸 장난 겸 이런 말을 했다.

“네가 덜 바빴구먼. 지금 먹고 살만 한가보다. 이런 고민을 하는 걸 보니.”

 그 말은 나를 아주 외롭게 했다. 그리고 그때는 실제로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일을 하고 있던 때라서 ‘내가 더 바빠지면 해결이 될 문제일 수도 있겠구나. 남들은 더 바쁘게 사는 중인데 내가 시간이 많아서 쓸데없이 철학자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하며 수긍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이후 열심히 취업준비를 해서 결국 바삐 돌아가는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고, 많은 신입사원들이 누구나 그렇듯이 쏟아지는 업무와 야근으로 얼룩진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오히려 이 고민은 더욱더 깊어져 갈 뿐이었다.  

 도대체 내가 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무사히 왔는데 뭐가 문제가 되어 나는 이렇게 지독한 무기력증과 만나게 된 것일까? 아직도 그 물음에는 정확하게 답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이 무기력과 우울감은 절대로 가볍게 지나갈 감정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간 앓았던 신체의 병들에 견주어보아도 아주 고통스럽고 빠져나오기 쉽지 않은 문제였다. 마음의 그늘이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것이라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도대체 ‘나’에게 ‘나’를 찾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기에 이렇게 마음 쓰라려하는지 신기하고 또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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