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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yking Oct 01. 2021

서른 살, 우울의 원인에 대한 고찰(16) 습관

#16. 우울도 습관이다.


#우울, 마음의 습관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많았다.

‘우울도 마음의 습관이다.’


사실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별로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내가 우울에 깊게 빠져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번 우울에 빠져들고 나면 다음에 우울에 빠지는 시간이 짧아지고, 그 빈도가 늘어난다. 자극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도 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이 우리의 몸의 면역력이 약해지면 각종 질병이 잦아지듯, 마음도 마찬가지로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라 병균(각종 우울의 원인이 되는 부정적 시그널들)에 취약해져 금방 감염되어버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어렵지 않게 수행하는 악습관처럼, 나는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어렵지 않게 우울해졌다. 생각의 방향은 자꾸만 좋지 못한 쪽으로 흘러가고, 심지어 마음이 괜찮은 날에는 ‘어라, 나 오늘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좀 괜찮은데? 분명 난 이런저런 것 때문에 요즘 계속 우울해하고 있었는데.’라고 스스로 인식을 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그 우울한 생각을 떠올려버리며 이내 빠져든다.

나의 언니는 매일같이 우울한 고민을 하는 나를 향해 이런 말을 했다.

"너는 고민을 만들어서 하는 것 같아. 하나 해결해서 없어지면 다른 고민을 찾아서 다시 하잖아. 안 피곤하니? 난 그렇게 못 살 거 같아."

습관이란 게 원래 서서히 반복적으로 행해지다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면 더 이상 나에게서 분리해낼 수 없을 만큼 나를 집어삼키기 때문에, 우울 역시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한 번 생긴 우울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이고 주기적으로 우울해진다면, 마음에 악습관이 생겨버렸음을 의심할 수 있다.

 


#우울을 부르는 습관적인 행동들에 대하여

습관이라는 것에 대해 더욱 관찰해보자면, 어떤 특정 나의 습관에 의해 마음에 우울이란 장마철이 찾아온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스스로 우울을 끌어오는 몇 가지 대표적인 습관들을 떠올려보았다.


1. 스마트폰과 우울

내가 사용하고 있는 기계 중 가장 잘 사용하고 있어 지불 요금이 전혀 아깝지 않은 물건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지금처럼 떠오르는 생각들을 아무 장소에서나 손쉽게 글로 쓰고 편집할 수 있게 해주는 나의 아이패드, 그리고 또 하나는 나의 신문이자, 사람들과의 소통의 창구이자, 백과사전이자, 교양수업이자, 모든 스케줄 관리를 도와주는 고마운 나의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은 분명 나의 삶의 질을 올려주는 훌륭한 나의 조수이다.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수단이다. 그런데  매일같이 붙어 다니는 이 친구가 나에게 우울의 원인을 마구마구 던져준다. 눈을 뜨자마자 할일없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다 결국 SNS를 확인하게 된다. 새로운 뉴스와 소식들을 확인한다. 화장실에 앉아서도 오래 앉아있게 되면 심심하니 핸드폰을 보게 되고, 딱히 보던 게 없으면 또 SNS와 뉴스를 보게 된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에도,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피곤한 퇴근길 교통체증에도, 혼자 저녁식사를 할 때도, 그리고 잠들기 전 아쉬운 오늘 하루를 달래기 위해 졸린 눈을 비비며 깨어있을 때도 같은 행동이 반복된다. 그리고 자극적인 무언가를 볼 때까지 계속 반복되어 이어진다. 결국 마지막에는 나에게 행복한 타인, 훌륭한 타인, 부러운 타인들의 삶을 보여준다. 이러한 자극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고, 결국 나는 나의 단점 또는 나쁜 상황(남들보다 좋은 상황에 대해서는 이상하게도 잘 생각하지 않게 된다.)에 대해 뜯어보기 시작한다. 기승전‘우울’로 끝날 수밖에 없는 행동을 습관적으로도 하고 있었다. 질투, 비교, 그리고 주어진 삶에 감사할 줄 모르고 부족한 것만 들여다보게 되는 마음. 이것이 바로 스마트폰이 내게 주는 심각한 폐해였다.

어느 순간 이 사실을 인식하게 됨으로써, 나는 스마트폰으로 하릴없이 정보의 홍수를 탐색하다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우울함에 고개를 떨구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둘 중 하나였다. 아예 보지 않거나, 보고 나서도 마음을 다잡거나. 전자에 비해 후자는 가능하긴 하지만 훨씬 더 어려웠다.


2. 올빼미형과 우울

나는 올빼미형 인간이다. 아침형 인간에 대한 붐이 이렀을 때, 스스로 올빼미족이라는 사실이 왠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고 나도 아침형 인간이 되어보려고 노력을 해보았다. 그러나 아침형 인간은 나와 맞지 않는 습관이었다. 나는 주로 오전에 머리가 몽롱했고, 공부를 해도 야간에 해야 더 학습효과가 좋았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은 자정이 넘어가면 졸려 죽겠다며 무언가를 하기 어려워하는데, 나는 병원에서 야간약국에서 일하던 때에도 새벽 내내 아주 컨디션이 좋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냥 사람마다 체질이라는 게 있다는 걸 인정하기로 하고 올빼미 삶을 즐기기로 했다. 아침형 인간이 아침에 하는 것을 나는 자정에 하면 되니까.

 


 그러나 밤의 기운이란 묘하다. 밤은 사람을 감성에 젖어들게 한다. 같은 노래도 밤에 들으면 훨씬 마음을 울적하게 만든다. 아침의 태양과 지저귀는 새소리는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지만, 밤의 달빛과 풀벌레 소리는 사람을 골똘하게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자아 성찰’ 또는 ‘지난 과거에 대한 후회’등을 하기 딱 좋은 환경이다. 아침에는 “오늘 하루도 힘내자!”라고 말하기 자연스럽지만, 이 밤의 끝에 “오늘 하루도 참 감사한 하루였어. 내일도 파이팅!”이라고 생각하고 잠들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오늘 아침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하지 못했어.” 와 같은 아쉬움이 절로 나온다. 끝이란 건 그런 거니까. 하루하루는 분명 연속적이지만, 밤은 오늘 하루를 잠으로 매듭짓는 그런 '끝'이라는 효과가 있으니까. 밤마다 일기를 쓰고 글을 쓰는 나에게는 아주 치명적인, 그야말로 비에 쫄딱 맞을 준비가 다 된 시간이다. 게다가 여기서 위에 언급한 스마트폰까지 하기 시작하면 그 시너지로 영향력은 배가 된다.


3. 혼자만의 시간과 우울

요즘 유행하는 MBTI유형으로 말하자면, 나는 INFJ이다. INFJ에 대한 설명 중 흔하게 등장하는 부분이 바로 ‘혼자 만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점이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도 물론 나름의 재미가 있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왠지 모르게 나의 배터리가 닳아간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다시 충전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별거 없이 그저 혼자 생각하며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충전이 된다.


 서른이 되면서 나는 혼자 다니는 시간이 많아졌다. 누군가를 불러내기엔 시간이 아주 예기치 않게, 그리고 짧게 나오는 날이 많았다. 나도 그렇지만 상대방도 그렇기에, 이제는 세명만 되어도 서로 시간 맞춰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어차피 혼자 다니는 걸 좋아하다 보니, 그렇다고 해서 외롭다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게다가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면서 내가 다니던 직장은 초장부터 재택근무를 했기 때문에 사무실에 나가는 일도 거의 드물었다. 나는 남편을 제외하면 거의 완전히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혼자 카페에 앉아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시간이 너무 재밌고 좋았다. 단, 내 기분이 우울에 빠지지 않았을 때는 말이다. 사람을 만나면서 억지로라도 상대방을 위해 웃음을 지어주고, 내 감정을 감추고 그날의 약속을 즐기는 그런 시간들이 없어지니 우울에 한번 빠졌을 때 그 늪에서 헤어 나오기가 이전보다 훨씬 어려워졌다. 누군가와 함께 웃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자연히, 그리고 상대방의 밝은 에너지로 인해 내 에너지가 함께 영향을 받아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날도 분명 있었는데 그런 일이 없어진 것이다. 내 울적한 기분을 전환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은 온전히 나뿐이었고, 나는 에너지가 고갈된 무기력한 아이의 상태였다.


 

4. 우울이 부르는 우울

 우울함은 계속 둘수록 더 상황을 악화시킨다. 우울해서 밖을 안 나가고, 밖을 안 나가니 더욱더 우울해진다. 우울해서 제대로 밥을 챙겨 먹지 않고 내 식탁이 나를 대접하는 느낌 없이 대충 끼니를 먹는다. 그럼으로써 더욱 우울한 기분에 빠져든다. 움직이지 않으니 살이 찌고, 살이 찌니 더욱 우울해져서 더 막 당분을 먹어버린다. 그러면 더욱 살이 찐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소설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밥나무가 생각난다. 어린 나무일 때 그 뿌리를 뽑지 않으면 행성을 삼켜버리는 바오밥나무. 문제는 뿌리가 생겼을 때는 스스로를 돌보지 않아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내 삶이 삼켜져 버리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나를 둘러보게 된다는 점이었다.



힐링 추천 - 나의 맞춤형 ‘우울을 부르는 습관’ 찾기

우울을 부르는 습관은 사람마다 비슷한 경우도 많고, 나만의 특별한 것이 있기도 한 것 같다. 우선 이런 나의 습관이 나에게 우울함을 불러일으킨다고 인식을 하기만 해도 반은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한창 우울에 빠져있을 때는 이런것마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만의 바오밥나무 뿌리를 인식하기만 해도, 스스로 ‘저거 뽑아내야 하는데…!’하고 생각할 힘이 생긴다. 그래서 반드시 인식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요즘 들 전과 달리 계속 우울했던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냥 두면 앞으로도 그 기분이 지속될 확률이 높다. 내가 가장 우울할 때, 너무 서럽고 힘겨워 눈물이 날 때, 그 순간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한번 떠올려보면 금방 쉽게 몇 가지는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나서 그것들을 조금 피하려 노력해보자.

원인은 분명 있다. 그리고 그렇기에 우리는 그것을 바꿔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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