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hinyking Oct 10. 2021

서른 살, 우울의 원인에 대한 고찰(18) 비교

#18.  습관적인 비교의 결과가 내 행복을 결정하려고 들 때


#어쩌면 원래 사실 이대로도 이미 행복하다

나는 아무 일 없는 일상에서 우울을 만났다. 다시 말하면, 남들 보기에는 전혀 아무런 문제가 없이 잘 지내는 것 같을 때 가장 큰 우울의 장마에 빠졌다. 그것이 내게도 너무나 이상했다. 가끔 이런 식으로 말하는 지인이 있었다.

“네가 무슨 걱정이 있어서 우울해?”

그래서 고민했다.

 ‘그러게.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힘들고 우울하지?’


많은 고민들을 했지만 그중 비교에 대한 고민내게 다소 신기한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

‘만약에 내가 혼자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면, 그러니까 이 세상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그저 나 혼자 요즘처럼 먹고, 입고, 일하고, 자고, 그렇게 생활한다면 지금 이 상태는 과연 우울한 상태였을까?’

이 세상에 혼자만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세상에는 비교할 대상이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내가 못났다는 사실도, 내가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도, 내가 재능이 많지 않다는 사실도, 내가 돈이 없다는 사실도 전혀 슬프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오롯이 나만을 생각하고 나만을 바라볼 것이다. 잠시 그런 삶을 상상해보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생각해보니 나는 지금 이대로도 꽤 괜찮았던 것이다. 지금 이대로 천국의 평화로운 동산에 살고 있는 한 마리의 다람쥐처럼 먹고 뒹굴고 놀며 행복감을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었다. 나는 우울하지 않을 것이다. 원래 사실은 나는 지금 행복한 상태였던 것은 아닐까?

나는 스스로를 남들과 비교를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비교가  아예 불가능한 곳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생각보다 나 역시 비교의 노예로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비교란 건 불행하여 허우적거릴수록 더 깊어지는 지옥의 늪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그 늪에 있다.

  


#비교력 향상이라는 비극적인 자율학습

비교라는 것은 일종의 자학과 비슷하다. 외부에서 행해지는 비교도 있지만, 사실 그것도 나 자신의 마음이 건강하다면 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무시해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도 무어라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타인과 나 자신을 비교한다. 어쩌면 자신의 못나고 부족한 모습을 찾을 때까지 비교를 한다. 굳이 화려한 타인의 삶을 궁금해하고 들여다보면서 좋은 모습들을 눈에 담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돌아본다. 모든 행동들은 여러 번 반복하여 행하고 나면 그 실력이 늘어날뿐더러 결국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 비교의 스킬(?)도 마찬가지다. 점점 더 넓고, 깊고, 복잡한 형태로 응용해가며 타인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하는 능력이 길러진다. 자율학습도 이렇게 충실하고 열심히 하는 자율학습이 세상에 또 없을 정도다.


누구나 어린 시절에 비교를 당해 기분이 상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 기억이 있다. 형제들 사이에서 당했던 비교도 있었고, 같은 반 학우와 단지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비교를 당했던 적도 있었다. (하필 나와 이름 한 글자 다른 그 친구는 키도 크고, 예쁘고, 똑똑한 친구였다.) 아주 나쁜 경험이었다. 비교를 행하는 사람들이 나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나쁜 행동을 내가 나 스스로에게 직접 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나는 비교를 하고 싶지도 않고, 부당한 경험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스스로에게 비교를 자행하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나중에 자식이 생기면 내 아이에게 이런 식으로 무의식적인 비교를 해댈까 스스로가 두려워질 정도로.


#비교의 무한함과 열등감

비교에는 끝이 없다. 그게 사람이라면 대상자는 끝없이 훌륭한 사람들에게까지 올라갈 수도 있고, 비교의 영역 또한 나의 진지한 전공에서부터 사소하고 작은 취미까지 모든 능력에 걸쳐서 할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잘하는 것이든 못하는 것이든 말이다. 그리고 내가 잘하는 영역에서의 비교라고 해서 절대 행복할 리 없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모두의 능력과 상황은 각기 다르며, 나보다 훌륭하게 무언가를 해내는 사람은 분. 명. 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놀라운 사실은 전세계적인 인재들이 모여있는 하버드대학교 재학생들마저도 ‘비교’로 인해 괴로워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누가 봐도 우수해 보이는 학생들도 항상 자기보다 우수한 사람이 앞에 존재하는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다. 끝이 없는 영역에서의 싸움이라….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말 승산이 없는 싸움이다. 왜 이런 의미 없는 싸움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이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이 없을까?


#모든 원인의 중심에 놓여있는 ‘비교’하는 습관

앞에서 많은 우울의 원인들을 주제로 이미 고찰해보았다. 하나하나 다시 곱씹어보니 그것들 중 ‘비교’라는 습성과 동떨어진 영역은 거의 없었다. 각기 다른 주제였지만 대부분 ‘다른 사람들은 이런데 나는 왜…’라는 마음이나, ‘쟤는 이렇게 사는데, 나는 왜….’라는 비교의 생각들이 지배적이다. 내가 나를 오롯이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많은 부분의 우울이 사라질 것 같다. 하지만 비교의 습관으로 인해 나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너무나 힘겨워하고 있었다. 

더 아름답고 싶고, 더 환영받는 사람이 되고 싶고, 더 날씬하고 싶고, 더 유능하고 싶고, 더 부유한 환경에서 살고 싶고, 더 가지고 싶은 것투성이다. 결국은 평가를 향한 인정의 욕구가 기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평가가 때로는 외부인의 말이기도 했고, 때로는 나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말이기도 했다.


요즘 세상은 서로가 서로의 삶을 너무나도 잘 들여다보게 만들어져 있다. 화려한 모습을 쉽게 자랑할 수 있는 세상이고 서로 그런 모습들을 SNS를 통해 표출한다. 타인의 인생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나의 일상과 비교하지 말아야 하는데 사람 마음이 그런 게 쉽지가 않다. 그리고  나 역시 행복한 순간들을 타인에게 전달하듯 SNS에 그것을 담는다. 아마 누군가는 나의 행복한 을 보고 스스로 열등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참 열등감을 가지기 쉬운 세상이다.



#불완전한 감정을 건전하게 사용하기 위한 노력

비교하는 습관을 없애기 위하여 많은 시간 고민도 해보고, 먼저 고민한 사람들의 생각도 읽어보며 얻은 결론은 ‘인간이 비교를 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그 사실에 좌절했다. 그러나 사실 비교라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며, 때로는 비교를 통해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비교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면, 비교의 긍정적인 측면을 활용하고자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나에게는 두 가지 노력이 필요하였다.

하나, 상대방의 것을 향하여 진심을 다하여 인정해주고 손뼉 쳐줄 것. 속으로는 좋아 보인다 생각하면서도 그 부러움과 시기심 때문에 막상 겉으로는 올바른 축하나 인정을 해주지 않으며 (또는 뜨뜻미지근하게 인정해주며) 입을 삐쭉거리지 말고, 속에서 느끼고 있는 감정 그대로 상대방을 훌륭하다 인정할 것.

둘째, 그 사람의 그것을 닮아가기 위한 힌트를 상대방에게서 얻어낼 것. 비교의 마음이 들고 질투심과 열등감을 느꼈다면 그것은 내가 가지고 싶어 하는 무언가 일 확률이 높다. 나도 잘 모르던 내 마음의 소리를 듣게 하는  일종의 힌트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내 눈앞에 그것을 쟁취해낸 상대방이 힌트를 들고 서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 사람은 오히려 내 인생의 귀인처럼 느껴진다. 내 눈앞에 이런 좋은 예시가 저절로 굴러들어 오다니!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반드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비교로 인해 우울해졌다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길래 이러한 비교를 통해 우울감을 느낄 정도인지를 먼저 찾아내야 한다.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그것이 맞는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정말 행복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 단순하고도 어렵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른 살, 우울의 원인에 대한 고찰 (17) 자아 거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