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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박신영 Nov 08. 2017

토익 900점과 피아노 잘 치기

'질투는 나의 힘' 이었을까

  얼마 전 자주 들여다보는 까페글 중 " 토익 900점과 공인중개사 어떤 것이 더 어려울까요 " 라는 글에 댓글을 달았더니 경험담이나 달지 말고 조언을 하라는 글이 돌아왔다. 개인적으로 토익 900은 학원을 두 세 달 다니며 노력하면 가능한 점수라고 생각하나 공인중개사는 그보다는 더 공부하고 추진력과 끈기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랬더니 영어가 어떻게 2~3개월만에 가능하냐며 글쓴이가 아닌 타인에게서 날선 답이 돌아오니, 나의 답은 다시 본문글에 보면 학교 때 영어를 잘했다고 적혀있다고 말할 뿐이었다.



   오늘 학교 교수님 레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내가 교수님께 묻던 질문과 그 질문을 할 때의 내 심정을 떠올려보았다.

   "어떻게 해야 피아노를 잘 칠 수 있을까요?"     

   "연습을 많이 하셔야죠. 다른 비법이 있는 건 아니랍니다"


    2~3개월 학원 다니면 토익 900점은 나오기 쉽다고 적은 내게 날선 댓글을 단 그이의 마음이 확 이해가 갔다. 학원을 가보지도 않고 공부도 안해보고, 쉽지않은것을 쉽게 말한다며 내게 타박하던 그 사람.


     내가 피아노에 대해 느끼는 지금의 감정은 '열등감'이다. 해보지도 않고 안될 거라고 생각하는 무기력감과 자신감 없음, 노력하기 싫은 마음이다. 연습 없이 잘 치기를 바라는 도둑놈같은 심보이다.  교수님이 내게 주문하는 것은 연습. 그러면 알아지고 깨달아질 터인데 그러지 않고 좌절만 하고있는 내 모습이 얼마나 답답해보일까. 교수님 학창시절 연습방법이나 연습량에 대해 묻는 내가 피아노를 잘 치는 비법이라도 알고자 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겠다.

     내가 댓글을 단 이의 마음을 알듯이 교수님께도 내 마음이 충분히 보였을 것이다. 토익 학원을 2~3개월 다니기 전, 각오없이 보았던 첫 토익성적은 600점대. 수학보다 영어는 좋아했으니 학원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기 어렵지는 않았으나 회사업무를 마치고 늦은 저녁부터 밤까지 듣는 학원 수업 그리고 시간될 때 틈틈이 하는 공부가 내게 쉽고 즐거운 일이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간단하고 쉽게 들릴 말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 안에 나의 노력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었다.

   연습하면 된다는 교수님의 간단하고 단순해보이는 말 속에는 악기가 생활의 중심이자 필수적인 일부로 지내는 시간들과 어려움을 참고 적지않은 시간을 그야말로 연습을 하며 채우는 노력의 시간이 들어가있음을 나는 왜 생각지 못하며, 해보지도 않고 좌절하고 포기하려 하는 것인지. 그리고 이것이 열등생의 마음이라는 것도 알게되었다. 그러니 피아노 앞에서 내가 얼마나 작아지는지, 영어처럼 지금은 조금 못하더라도 잘할 수 있을거라는 자신감이라도 가질 수 있을런지 지금으로서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무실에서 돌아오면 머릿 속으로는 내내 연습 생각을 하며 씻고 먹고 티비를 보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가끔 하는 피아노 연습은 늘 처음처럼 새로운 리셋이라, 연습과 그로 인한 깨달음이 쌓이질 않으니 나를 이끌어가는 스승님들도 결코 쉽지 않으시리라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끊임없이 이끌어주시려는 분들을 만났으니 잘 해야할 터인데..




    지금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는 창피한 기억은 초등학교 시절 독후감을 어떻게 써야할 지 몰라서 남들이 잘 안 볼 것 같은 책 중에서 남의 독후감을 베껴 간 일이었다. 책을 읽고 느낀 점을 글로 쓰는 것이 독후감 이라고 하는데 지금도 떠오르는 당시의 감정은 그야말로 순백색, 하얀 종이 앞에 무엇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는 심정으로, 당시의 내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선택한 방법이었다. 다른 건 다 잘하며 독후감만 백지로 낼 수는 없다는 자존심과 허세도 있었던 것 같다.


   열등감이 나의 글짓기의 원천이 된 것이었을까. 지금은 브런치 어플의 글쓰기 버튼을 누르고 글을 쓰고자 하면 넘쳐나는 생각들로 인한 소재는 물론이거니와 '된장국' 이라든지 '젓가락' 이라든지 단 하나의 단어 하나만 주어져도 A4 두 세 장은 끄떡없이 흰 도화지를 채울 수 있을 정도의 자신감으로 글의 기승전결과 줄거리를 마음에 세워둘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대신 초등학교 2학년 때의 독후감을 베껴쓰던 내가 느꼈던 막막함도 생생히 기억하니, 지금 내가 피아노 앞에서 느끼는 심정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지금의 내게 글쓰기가 그 때보다 조금은 수월해진 이유를 단숨에 설명할 수 없듯이, 언제인가 내가 피아노 앞에서 자신감을 갖고 연주할 수 있을만한 시간들을 만나려면 그 때까지 갖게 될 시간들이 단순하고 쉽지만은 않으리라는 것도 충분히 알 것 같다.


    질투는 나의 힘, 좌절은 나의 회복탄력성, 열등감은 나의 원동력 이었을까. 지금 글쓰기는 내가 작고 약하다고 느낄 때 내게 자존감을 채우고 세워주는 힘이 되어주고 있으니, 앞으로의 무수히 많은 노력과 인고의 시간이 흐르고 흐른 오랜 어느날, 그 날에는 내 스스로 작고 초라하게 여겨질 때 피아노가 내게 자존감을 세워주고 힘을 주는 존재로 만나질 그 날이 오리라고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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