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많이 읽어보고, 드라마도 많이 보아왔지만, 요즈음에야 제대로 빠져드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작품의 종류를 간단히 인지한 후, 내가 그 작품에 충분히 빠져들겠다는 다짐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먼저 분류를 해보자. 작품들 중에는 극사실주의로 현실세계를 반영하는 작품들이 있고, 일상과는 별개의 환타지가 배경인 작품이 있으며, 현실에 기반을 확고히 두면서 이야기를 진행해가는 가운데, 이 작품 내에서만 존재하는 새로운 룰을 제시하여 사건을 엮어가는 작품이 있다.
극사실주의의 현실세계를 섬세하게 반영한 작품으로는, 순끼 작가의 <치즈 인 더 트랩>이 있다. 읽다보면 일상에서 그냥 무시되고 넘어가 스스로도 잘 못 느끼는 내 마음을 살펴볼 수 있는데, 아주 섬세히 그리고 있어서 읽으면서 내 마음도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둔해서, 또는 바빠서 그냥 넘어가는 내 마음이었는데, 나도 저 때 저런 경험이 있었지. 대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남들은 어떻게 해결해나갈까? 같은 부분에 대한 답을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을 읽다보면, 일상은 늘 똑같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겉보기에만 반복일 뿐, 늘 새로운 사건이 도사리고 있는, 어찌보면 매우 다이내믹하고 스펙터클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흔한 일상을 이렇게 섬세하게 표현해내고 있는 점에서 감탄할만하다.
이 작품 덕에 대학시절의 안좋았던 기억 몇 개도 나아졌다. 20년이 넘게 지난 일이어도 생각하면 짜증나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 대학 1학년 때 교양과목을 들으며 알게 된 경영학과 남학생, 딱 20 분 정도 벤치에 앉아 커피 마시며 행정고시에 대해 이야기 나눈 적 밖에 없었다. 4월 봄이었다. 그 이후 캠퍼스에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남학생, 우리집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 집으로 전화를 걸어와 부모님께 연락하여 나와 사귀는 사이인양, 내가 그 사람에게 나쁜 짓을 한 양 이상한 소리를 해대고는 무례하게 끊었다. 부모님께 어떻게 해명을 했어야 했는지 참 난감했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만 잠시 아는 이에게 어이없이 당한 일에 나의 복수라고 해보았자 당시 하이텔 PC통신 대학 자유게시판에 하소연하고 댓글로 위로받는 정도였다. 그 때는 그 정도 말고 더 큰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방법을 따로 생각해본 적도 없고 여력도 없었다. <치즈 인 더 트랩>에서 주인공 홍설을 스토킹하는 찌질남이 한 명 나온다. 이 작품의 그 장면을 읽으면서,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미스테리했던 그 때 그 경영학과 남학생의 심리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 (심리가 없다는 게 심리였어!) 그래, 이게 치유지. 덕분에 고마웠다. 드라마도 인기를 끌었고, 앞으로 박해진, 오연서 주연의 영화도 기대된다. 작품은 지금도 계속 연재중이다.
일상과 별개의 환타지 작품으로, 즐겨보는 작품으로는 요즘 김종훈 작가의 <헤븐 투 헬>이 있다. 이 작가님 작품을 전작 <살생부>부터 보게 되었는데, 언제나 화려하고 스펙터클하다. 인간세상에 태어난 성모를 하늘로 인도하고자 하는 대천사장 아사엘의 이야기가 큰 줄거리이다. 작가님이 이야기를 잘 지어서 그렇겠지만 이러한 구도만큼 새롭게 풀어갈 이야기가 많은 주제도 없지 않을까도 싶다. 전작의 색조와는 전혀 다른 파스텔톤의 그림색이 처음에 다소 어색하진 않을까 우려했지만, 이 세계의 이야기 진행에 의외로 잘 어울리면서, 작품의 어두운 주제가 그림색 덕에 조금은 밝아지는 느낌도 든다. 드래곤볼, 슬램덩크류의 끝도 없는 대결과 싸움 구도만이 아니라, 선과 악, 신의 세계와 인간계 등 여러 철학이 함께 담긴 촌철살인의 대화가 있어, 단순히 선정적인 흥미 위주의 작품으로만 가볍게 여겨지진 않는다.
마지막으로, 오늘 가장 이야기하고 싶었던 두 작품이 있다.
일상을 기반으로 하나 작가가 그 작품에서만 해당하는 법칙을 만들었다. 그래서 일상과 환타지가 적절히 섞이며 이 법칙으로 인해 기존의 이야기가 살짝 다른 양상의 새로운 이야기로 펼쳐진다. 한편 처음 접할 때 약간의 저항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만 적용되는, 주인공에게만 적용되는 생소한 법칙이기 때문이다. 아실작가의 <가슴도 리콜이 되나요>에서 말하는 주술을 보자. 아실 작가는 이러한 법칙을 작품 시작 이후 첫 몇 회차의 말미에 여러번 보여준다.
- 유빈(주인공)은 아랑의 주술로 D컵이 되었다.
- 유빈은 남자와 헤어질 때마다 가슴이 한 컵씩 작아지는 저주도 함께 걸렸다.
- 염라의 저주로 인형이 된 아랑은 양기를 충전하지 않으면 죽는다.
- 유빈이 진정한 사랑을 찾으면 현재 가슴 사이즈를 유지할 수 있고, 아랑은 인형의 저주에서 풀려나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다.
사랑에 실패한 아랑은 작은 가슴 때문에 실패한 것이 아닐까 낙담하고 있는 중에 아랑을 만나게 되는데, 처음에 이 황당한 법칙이 매 화 말미마다 나와서 읽으며 적쟎이 당황했던 것 같다. 그러나 법칙에 조금 익숙해진 이후로 아랑이 새로운 사랑,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에 빠져들며 함께 응원하게 된다. 재미있는 설정으로 재미있는 이야기 진행이 기대된다.
또 다른 작품으로 홍성수 작가의 <티라레>가 있다. 이 작품도 온전히 빠져들려면 시작 전에 다소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죽는 사람이 있고, 구하는 사람이 있다. 구하는 이에겐 1000일 동안 12명의 사람을 구하는 임무가 부여되는데, 천일 이전까지는 밤이 되면 곰 또는 사자 같은 동물로 변신하게 되고, 천일이 지나도록 12명의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영원히 동물의 모습으로 살게 된다. 이 법칙은 21화가 진행된 오늘에서야 비로소 독자들에게 다 알려지게 되었다. 재벌상속녀인 여주인공이 계속 곰으로 변하며, 자살을 앞둔 사람의 심정을 생생히 느끼게 된다. 여주인공은 그들의 위치를 찾아 죽어가는 그들을 살려 다시 새롭게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만들어간다. 그럴 때 나오는 행복의 빛, 회복의 빛이 주인공에게 비치면 한 생명이 다시 살아난 것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를 스스로 죽이고자 살의를 품은 사람의 마음을 원래의 평화로운 마음으로 돌리고 희망을 찾게 하는 것, 그것이 주인공의 임무이다. 이 과정에서 꿈도 찾아주고 꿈을 이루기 위해 도와주며 자살에 이르게까지 만든 힘든 상황 또한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최근 왕십리 비트플랙스 몰 3층에 티라레미수 라는 까페가 생겼다. 이 까페 이름을 보자마자 이 만화가 생각났다. 여주인공은 자신이 구해주는 사람들에게 꼭 티라미수를 맛보게 하며 삶의 달콤함을 되새기게 한다. 티라미수의 뜻을 설명해주는 주인공의 이야기에, 이 작품의 제목의 의미가 담겨있다. 티라미수는 이탈리아어로 '티라레' (TIRARE : 끌어올리다, 잡아당기다) 와 '미' (MI : 나를) 그리고 '위로' 라는 뜻의 '수' (SU : 위로) 가 복합된 명칭이다. 실제로 티라미수는 한 입 베어문 순간 기분을 좋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고 한다. 티라미수를 한 번도 안 먹어본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왕십리 티라미수 가게에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티라미수를 생각하니 이 만화가 저절로 떠오르고, 자살을 생각하던 이들에게 티라미수를 맛보여주던 주인공도 떠올랐다. 왠지, 언젠가 힘들어질 때 찾아가고픈 그런 곳, 거기서 삶의 빛을 다시 한 번 되살려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되는 곳 으로까지 확장된 생각을, 주인공은 나에게도 줄 수 있을까.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들이 더욱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앞서 소개한 작품들 모두 각자의 개성이 있고 철학과 세계관이 돋보인다. 앞으로의 이야기들이 궁금하고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