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을 하며 배운 것
운동을 하고 싶었다. 에너지가 뚝뚝 떨어졌다. 고민이 되었다. 무릎이 아프니까.
운동을 못해 우울하거나, 무릎이 더 아프거나 선택해야 한다.
찬찬히 생각해 봤다. 내가 지금 복싱을 가서 잃을 건 병원에 가는 귀찮음과 치료 기간이 늘어나는 거다. 최악의 경우 고질병이 돼서 뻑하면 아프고 가뿐한 무릎을 가지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그런 확률은 낮다.
얻을 건 내 삶의 감정과 에너지를 어떻게 다룰지 삶의 한 방식을 배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가서 너무 아파지면 다음 날 어쩔 수 없이 쉬겠지. 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항상 합리적 판단이라 생각되는 이성적 판단이 우선한 삶을 살았다. 당연히 아프면 쉬고 빨리 치료해야지 좋아하는 운동 더 길고 오래 할 수 있다는 이성적인 현명한 일반적인 생각. 괜히 멍청하게 악화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 그런데 그건 ‘미래’를 위해서 사는 보험과 같은 메커니즘의 사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살아있지 않으면 평생 그렇게 죽은 채로 살다 사라지는 거다. 오늘 죽을지도 모르는데, 내일 덜 아픈 무릎을 가지면 행복할까? 이건 너무 극단적인 걸까?
‘더 살아있게 살고 싶다.’ 이 생각은 약간의 이상적인 희망, 좀 더 개념에 가까운 생각이었는데, 어느 순간 목에 칼이 대진 듯 강렬하게 느껴지더니 점점 더 그렇게 살수록 생각이기보다 칼이 목에 들어온 것처럼 절박한 사실의 느낌으로 들어온다.
내가 살아있다는 그 느낌을 느낄수록 죽은 채로 사는 공포, 끔찍함도 함께 들어오는 거다.
체육관에 가기 전 다녀와 이 고민을 글로 써 볼 생각을 했었는데, 나는 나름 중요한 고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데 막상 또 복싱 가서 보니 나약한 사람 같은 고민을 한 것 같아서 부끄러워서 쓰기 싫어졌다. 근데 부끄러워서 글을 안 쓰는 건 더 나약한 일 같아서 글을 쓴다.
좀 뛰니까 무릎이 아파졌다. 손목은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10번 정도 타격하니까 다시 아팠다. 아픈 건 아픈 거고 몸을 움직이니까 너무 살 것 같았다.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살아야지! 내가 느끼는 기분이 고민할 생각을 날리고 확신을 주었다.
무릎이 아파서 걷는 게 힘들었는데 다른 몸이 깨어난 건지 오히려 무릎의 통증만 딱 떼어져서 일부로 느껴졌다. 다른 몸을 느끼지 못하니 모든 신경이 다 아픈 무릎에만 집중되어서 더 아픈 것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복싱이 재밌나, 생각해 보면 잘 모르겠다. 근데 복싱을 하면서 이렇게 나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배우는 게 좋다. 앉아서 공부로 배울 수 없는 것들이다. 복싱 영상을 한둘씩 찾아보게 되고, 카페에 가입하고 장비를 사고. 점점 빠져들어 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