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돌아보는 나의 어린일기 #5
사실 살면서 실패를 겪어본 적이 별로 없다. 아직 20대라 경험치가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첫 취업준비에서 고배를 마신 것 외에는 정말 평탄하게 살아왔다.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들어 내가 과연 실패를 겪을만큼 어려운 일들에 도전했는지 의문이 든다. 못할 것 같으면 그 길을 선택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 쉬운 것들만 선택해온 것은 아닐까? 사실은 실패가 두려웠던 건 아닐까.
얼마전 구글 수석 디자이너 김은주님의 '생각이 너무 많은 서른 살에게'라는 책에서, 챕터 2의 <한 번의 성공보다 백 번의 실패가 차라리 더 나은 이유>를 읽으니 내가 고민한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입시에 최적화된, 일률적이고 틀에 박힌 그림을 그리는 미대 입시생이었던 작가는 제멋대로 하며 가끔 죽을 쑤기도 하지만 때로는 멋진 디자인을 만들어 내기도 하는 친구를 부러워했다. 정해진 길을 걷지 않았을 때 겪을 실패가 두려웠기에 마음이 가는대로 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 역시 작가님과 비슷한 삶을 살아왔다. 하라는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가고, 취업하려면 공모전도 나가고 인턴도 해야 된대서 했다. 하지만 그런 내 모습보다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개척해 나가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내가 대학생일 때 한창 유튜버들이 성장하기 시작했는데 남들보다 일찍 유튜버가 된 사람도 있었고, 옆학교의 나보다 어린 한 학생은 해외여행을 갔다가 맛본 음료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카페를 창업했다. 그들은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실패들을 겪으며 더 단단해졌을텐데, 나는 애초에 그런 도전을 하지 않았기에 실패를 겪을 기회도 없었다. 나도 경영학과 공부보다는 디자인이나 예술 관련 일에 더 관심이 많았지만, 쉽사리 방향을 틀지 못한 것은 막연한 도전에 따르는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 컸다.
"실패는 성공을 향한 길이다. 완전한 자신을 만들기 위하여 누구나 한 번 쯤은 걷는 길인 것 같다."
(오늘도 11살의 나에게서 큰 교훈을 얻는다. '완전한 자신'이라니...)
놀랍게도 한 번의 성공보다는 백 번의 실패가 훨씬 더 나를 노련하게 만든다. 그러니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실패를 해 봐야 나의 실체를 만난다. (중략) 우리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패를 두려워하고 혼란을 느끼는 이유는 아마도 아직 나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를 만나야 한다.
- 김은주, <생각이 너무 많은 서른 살에게>
우연히 마주한 16년 전 나의 일기와 김은주 작가님의 글에서 동일한 메시지를 얻었다. 완전한 자신을 만들고 진짜 나의 실체를 만나기 위해서는 실패를 해 봐야 한다. 실패한 나를 마주할 용기를 내야 스스로의 한계를 한 번 뛰어넘을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그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던 것이다. 결국 정해진 대로 행동하고 틀에 박힌 사고를 해야 칭찬을 받고 '똑똑한 아이'라고 불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을 켜면 성공에 대한 이야기 뿐이다. 취업, 다이어트, 결혼 등 무언가를 이루고 성공한 행복한 이야기들만 올라오지, 실패를 인증하는 사람은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고, 인스타그램 속의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인다. 최근들어 이런 분위기가 나로 하여금 실패를 더 두려워하고 오직 잘 할 수 있는 것들만 찾게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날 보는 사람들의 기대와 지금껏 만들어온 나의 껍데기를 무너지게 할 수 없어서, 무언가가 잘 안풀렸을 때 돌아오는 상실감이 인스타 속의 타인들을 보면 더 커질 것 같아서.
나는 본투비 관종기질이 심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만큼 타인의 시선을 더 의식하기도 한다. 가끔 다른 사람들의 잣대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도 할 정도.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잣대라는 걸 오늘 이 글을 쓰면서 새삼 다시 느낀다. 항상 남들에게 잘보이는 모범생일 필요는 없으니까, 실패할 것 같아도 두려워하지 말고 되든 안되든 내 마음이 시키는대로 해보기. 일단 부딪혀보고 안됐을 때 스스로에게 실망하지 말고 앞으로 있을 성공의 밑거름이라 생각하기.
저 일기를 쓰고 16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아직도 실패를 두려워하고 있는 애송이 어른이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으로부터 10년, 15년이 지난 후의 나는 이미 실패를 극복하고 진짜 나를 만난 진정한 어른이 되어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