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돌아보는 나의 어린일기 #6
15년 전의 이 일기는 참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영어학원에 일찍 갔을 때 짝 하영이가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의자를 치워준 것.
아랫집 사람들이 시끄럽지 않도록 뛰지 않고, 밤에는 피아노를 치지 않은 것.
샤워를 하신 아버지가 우리 발 젖지 않도록 욕실 신발을 세워두시는 것.
처음 읽었을 때는 이렇게 사소하고 당연한 것들을 배려라고 생각했구나 싶어서, 어린 날의 내가 귀여워서 웃었다. 초등학생이 생각하는 배려는 이런거구나. 작은 행동들이지만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행동한 것이니 배려 맞지.
그러다 문득 현재의 나는 어떤 배려를 하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당장 오늘, 이번주에 내가 어떤 배려를 했는지 생각해봤지만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오히려 아침 출근길의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는 내가 서있는 자리를 뺏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인상을 찌푸렸고, 헬스장에서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어서 내가 운동하는 소리가 얼마나 큰지 딱히 신경쓰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예의없는 사람은 아니니 회사에서 사람들을 대할 때 생각없이 막말을 내뱉지는 않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진심으로 배려해서 한 말은 없었던 듯하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도 은연중에 내 업무와 목적만이 먼저가 되었다. 12살의 나 보기가 부끄러워진다. 어른이 될수록 사소한 배려마저 없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반대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려를 받은 경험을 떠올려 본다.
최근에 다이어트를 시작한 나를 위해 샐러드 맛집을 찾아 함께 먹어준 고마운 친구들. 아직 이직한지 얼마 되지 않아 새 회사의 히스토리를 잘 모르는 나를 위해 참고할 수 있는 문서들을 정리해준 팀원. 와인바에서 진행하는 북토크인데 금주중인 나를 위해 따뜻한 차를 준비해준 호스트분. 물이 안나와서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수도관 공사를 새벽에 조용히 진행해주신 집주인 할아버지. 어느덧 낙엽이 많이 떨어진 길이 불편할까봐 아침마다 길을 쓸어주는 이름모를 자원봉사자분들.
생각해보면 배려받은 일이 이것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곱씹어보지 않으면 고맙고 배려심 넘치는 행위였다는걸 모를만큼 일상속에서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일들도 있다. 나도 모르게 배려를 받았지만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다보니 무심코 지나가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알려진 이야기지만, 미국의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는 매일 감사한 일 3가지를 적는 '감사일기'를 썼다. 하루에 감사할 일이 3가지 씩이나 있을까 싶지만 곰곰이 되짚어보면 나도 모르게 그냥 지나친 고마운 일들이 평범한 삶 속에서 묻어나온다. 습관적으로 감사한 일들을 생각해 내고 실제로 고맙다, 감사하다라는 말을 많이 할 수록 나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게 되고 더욱 이타적으로 살게 된다고 한다. 또 고맙다는 말을 듣는 사람보다 하는 사람에게 심리적으로 더 긍정적인 변화가 생긴다고 한다.
어린 날 내가 쓴 '배려'라는 제목의 일기와 오프라 윈프리의 일화를 읽고 나도 사소한 것에 감사함을 잘 표현해보기로 했다. 때마침 회사에서 사내마트를 담당하는 총무팀 동료분이 마트에 입고되는 간식들에 대한 임직원들의 의견을 수용해 간식의 종류와 발주량을 변경했다고 공지했다. 곧장 그 분께 개인 메시지를 드렸다.
"고생 많으시다고 말씀드리려고 연락했어요. 구성원들의 의견 조율이 쉽지 않고 모두를 만족시키는 일이 정말 어려울텐데, 바쁘신 와중에 여러모로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아온 답변을 보니 누군가에게 하루의 힘이 되었다는 생각에 되려 내가 더 행복해진다.
"따뜻한 말씀 너무 감사합니다 ㅎㅎ 덕분에 다시 으쌰으쌰 할 의지가 생기네요! 다시 또 잘 해볼게요 모두가 만족할 때까지!"